"TV광고나 PPL(간접광고) 모두 중간 대행사에서 먼저 제안하고, 시청률 예상치나 기대효과 등을 보고 결정하는지라 자세한 내용까지 파악하진 못했죠. 판타지 사극이라는 말에 솔직히 이렇게까지 역사적 고증 문제가 불거질지도 생각 못 했고요."
"내부에서도 당장 (광고) 빠져야 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하루 사이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철회 결정을 내리는 걸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죠."
역사 왜곡과 문화 동북공정 논란을 빚은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지난달 22~23일 방영 2회 만에 방송 폐지라는 초유의 사태로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와 함께 기업 광고가 모두 취소되고 제작 지원이 불가능해지자 제작사와 방송국 역시 방송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논란과 비난만큼이나 감당해야 할 금전적 손해도 수백억 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드라마 2회 분량에서 드러난 역사적 왜곡이나 자극적 설정이 제아무리 창작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청자들이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는 데 있었다. 여기에 최근 중국이 우리나라의 김치나 한복, 판소리 등을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반중(反中)' 감정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논란이 된 드라마에 광고나 협찬을 한 기업 상당수가 유통·식품사들이었다. 업의 특성상 여론과 트렌드에 매우 민감하고, 그래서 누구보다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불만을 해결해야 하는 처지다. 최근 2~3년간 계속된 '노 재팬(No Japan)' 운동으로 일본 기업이나 브랜드가 잇따라 국내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본 기업들로서는 이 같은 역사 왜곡이나 반중 정서 또한 심각한 리스크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소비자들은 더 똑똑하고 기민해졌다. 과거에는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넣거나 방송국 게시판에 몰려가 항의 글을 올렸다. 이번에도 방심위에 접수된 조선구마사 관련 민원이 5100여건을 웃돈다고 한다. 하지만 심의·의결까지 시간이 걸리고, 실효성이 없는 사후 규제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경험했던 터라 이제는 직접 해당 드라마 제작을 지원하거나 광고하는 기업에 압박을 가하는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 중심에는 20~30대 MZ세대가 있었다. 주 소비층이자 트렌드를 선도하는 젊은이들이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집단행동으로 목소리를 냈다. 드라마를 직접 본 시청자이자 소비자들이 곧바로 문제를 제기하고 시청 거부를 선언했다. 또 온라인상에서 "조선구마사에 광고로 지원하는 기업들은 불매운동을 하자"며 광고업체 명단을 작성해 올리고, 광고를 철회하는 기업부터 명단에서 차례로 삭제하며 압박을 가하는 통에 해당 기업들은 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경쟁사가 영업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후 이미지를 개선하려 해도 쉽지 않은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터라 이번 사건 이후 윗선에서 별도 보고와 대책을 지시했다"며 "자세히 들여다 보니 네티즌들이 지적한 세부적 고증 하나하나가 전문가 못지 않은 수준이고, 불매기업 리스트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공유되고 있었다는 데 한 번 더 놀랐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전에 리스크를 피할 수 없다면 부정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회피하는 것도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고충을 털어놨다. 조만간 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이 같은 역사 인식이나 국가관도 사회적 책임으로 포함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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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경제부 차장 i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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