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부품 공급 안정화 됐지만 100개 품목 개발하는데 2兆
“기술 선별 어렵고 대기업·중견기업 지원 치우쳐”
대일 의존도는 오히려 ‘상승’…민간 주도로 정책 혁신해야

일본 수출규제 1년 반, 소재·부품·장비 핵심부품 공급은 안정화 됐지만 대일 의존도는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수출규제 1년 반, 소재·부품·장비 핵심부품 공급은 안정화 됐지만 대일 의존도는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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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김희윤 기자] #경남 창원 소재 유공압 기기 제조기업 영동테크는 1990년대 초 일본이 전량 독점한 굴삭기 유압조절기 국산화로 국내 굴삭기 대량생산을 주도한 뿌리기업이다. 윤찬헌 영동테크 대표는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되자 1990년 당시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이 유압조절기의 한국 수출량을 컨트롤해 국내 생산량을 제한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영동테크는 신사업의 일환으로 나노합금 개발에 매진하던 차였다. 은나노 입자 시장에서 일본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영동테크는 산화되지 않는 은나노 합금기술 개발에 성공, 국내 시장을 독식해 온 일본 제품 대비 70%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충남 예산의 필름가공업체 앰트는 일본의 특허 그물망에 묶인 열차단 필름 시장 개척을 위해 신기술 개발에 성공한 중소기업이다. 열차단 필름 특허에서 주기율표 103개 원소 중 75개 원소는 일본 A사의 특허에 들어가 있다. 조금만 피하더라도 곧장 미국과 독일 기업의 특허에 걸리는 상황. 김남훈 앰트 대표는 특허 밖 물질인 칼코지나이드계열의 세라믹 복합 코팅 기술을 개발해 일본의 특허 독점을 뚫고 소재 독립에 성공했다.

25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일본이 2019년 7월 소재·부품·장비 3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선 직후 일년 6개월 동안 정부와 민간기업이 소부장 국산화에 힘을 쏟아 온 결과 핵심 부품 공급은 점차 안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화수소 등 일부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조(兆)단위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결과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이 지나치게 폭넓다 보니 경쟁력 있는 품목과 기술이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거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의 소부장 예산은 2019년 1조942억원, 2020년 2조745억원에 이어 올해는 2조5541억원으로 2년만에 두 배 이상 확대된다. 이 중 R&D에만 연간 전체 예산의 86%인 2조2000억원을 쏟아붓는다.

필름가공업체 앰트는 열차단 필름 시장에서 일본의 특허 독점을 뚫고 소재 독립에 성공한 중소기업이다. 사진은 공장에서 세라믹 복합 코팅 소재 필름을 생산하는 모습. 사진 = 앰트 제공

필름가공업체 앰트는 열차단 필름 시장에서 일본의 특허 독점을 뚫고 소재 독립에 성공한 중소기업이다. 사진은 공장에서 세라믹 복합 코팅 소재 필름을 생산하는 모습. 사진 = 앰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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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 품목 개발에 2兆…대일 의존도는 오히려 ‘상승’

이 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일 의존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해 국내 소재·부품 수입액 1678억 달러 가운데 일본 제품이 267억9000만 달러로 16% 비중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2019년 15.8%와 비교해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소재·부품 분야 대일 무역적자도 같은 기간 141억5000만 달러에서 153억7000만 달러로 늘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정부의 소부장 국산화 정책이 효과를 얻으려면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주도로 지원이 이뤄지다 보니 경쟁력 있거나 사업화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별하기가 어렵고, 그렇다 보니 국책과제 수행 경험이 많은 대·중견기업 지원에 치우쳐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영동테크는 일본 기술력보다 앞선 은나노 합금기술을 내세워 정부 국책과제에 두 차례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신물질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이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이 회사는 자체 기술 제품을 개발하는 한편 기술을 적용할 고객사를 직접 접촉하고 있다.


김남훈 앰트 대표는 "일본 수출규제 이후 정부 지원사업이 확대된 것은 맞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수입대체 품목은 대부분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기획과제를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며 "중소기업의 직접 참여는 어려워 사실상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중견기업 지원 치우쳐…“민간 주도로 정책 혁신해야”

일각에서는 정부가 소부장 육성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만큼 '옥석 가리기'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 품목과 기업을 선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지원 정책을 혁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소부장 정책은 선택과 집중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후 1년6개월 동안 총 100개 품목의 기술을 개발하는 데 총 2조원을 투입했고, 현재 85개 품목에 대한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꼭 필요한 기술과 기업에 대해 엄격한 스크리닝 절차를 거쳐 R&D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기술 지원은 미뤄두고 민간과도 100% 매칭해 지원하는 등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국내 기업이 소부장 모든 품목을 국산화하고 경쟁력까지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글로벌 분업체계는 각 기업이 잘하는 분야에 특화돼 있는 상태인데 정부가 세계적인 수준에 가장 가깝고, 가장 핵심적인 분야의 소재·부품 기술 지원에 집중해야만 정책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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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 육성책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혁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올해 소부장 예산에 2조5000억원을 쏟아부을 계획인데 삼성전자 연간 R&D 금액(2019년 기준 20조1929억원)의 10분의 1에 그친다. 민간 주도로 소부장 투자가 이뤄지도록 세제 지원 같은 혜택을 주고, 정부는 행정 지원 등에 주력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소부장 국산화로 일본 기업과의 특허 분쟁이 늘어나는 가운데 소송 대응이 어려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정부가 법률 자문 등 분쟁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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