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언제부터 있었는가에 대한 연구는 오래된 것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의 연구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는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영향이 뚜렷했다. 수렵ㆍ채집 시대의 인류는 많지 않은 개체가 널리 분포하면서 본성적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원도 풍부했기 때문에 평화로운 삶을 영위했으며 전쟁은 없었다고 봤다.
전쟁이 인류의 역사에서 0.5%밖에 되지 않는 지난 1만년 동안 문명의 진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인간이 정착과 농업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인구 증가, 사유재산권의 등장, 계급의 분화에 이어 국가가 탄생하고 그 억압이 등장하면서 전쟁과 함께 문명의 온갖 부조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관찰되는 끊임없는 전쟁의 고리를 보면 문명과 전쟁을 함께 엮는 것은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이와 같은 주장은 미국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1940년에 발표한 '전쟁은 생물학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발명된 것일 뿐(Warfare is Only an Invention-Not a Biological Necessity)'이라는 논문의 제목에 함축적으로 요약돼 있다. 문명과 문화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전쟁이 없었으며 인간의 본성은 평화로운 것이라는 인식은 1960년대 히피문화와 반전운동의 기본 인식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문명과 함께 탄생했다는 주장은 그 후의 연구에 의해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미드는 에스키모의 경우 전쟁의 개념, 나아가 방어적 전쟁조차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스키모의 경우에도 그와 같이 평화롭지만은 않으며 현존하는 수렵ㆍ채취 부족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나아가 무작정 거처와 식량을 찾아 넓은 지역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영역이 있음이 밝혀졌다.
현장연구(field study)로 유명한 인류학자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경우에도 사정이 다르지 않음을 관찰했다. 채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들도 육식을 탐하고 무리를 지어 약한 동물을 공격했다. 나아가 무리마다 지키는 영역이 있음을 발견했다. 수컷들은 영역을 순찰하고, 무리에 합류하고자 찾아드는 암컷이 아닌 경우 침입자에게는 가차 없는 공격을 가했다. 물론 다른 무리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침략하기도 했다.
결국 전쟁은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태고부터 사용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 참혹함에도 전쟁이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현대에도 허다하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 지도 벌써 70년이 됐다. 그리고 전쟁의 집단기억이 희미해지니 평화경제가 등장했다. 경제 교류를 통해 평화를 도모하면서 국부를 증진할 수 있다는 해괴한 이상론이 나라 정책의 핵심이 됐다. 돈으로 갈등을 해소하면 전쟁은 없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쟁은 잉태된다. 방어할 능력이 없는 평화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로마의 멸망이 여실히 보여줬다. 훈족과 게르만 민족이 침입해오기 시작하자 서로마는 금은보화로 이들에게 뇌물을 공여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돈으로 구매한 평화는 오래갈 수가 없었다. 평화는 방어할 능력이 있을 때만 유지된다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북한이 우리 국민을 사살해 불태웠다는 발표와 그 후속 조치들을 보면서 이미 우리는 그런 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섬뜩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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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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