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리 /언론인·문화비평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 척 놀랜드는 글로벌 택배회사 페덱스의 직원이다. 그는 여자친구와의 크리스마스이브 데이트도 끝내지 못한 채 일을 하러 가던 중 페덱스 전용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 눈을 떠 보니 아무도 살지 않는 남태평양의 외딴섬. 4년간 고립된 생활을 하다 어느 날 파도에 떠밀려 온 판자를 주워 섬 밖으로 탈출을 시도해 천신만고 끝에 문명 세계로 돌아온다.
최근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이어지면서 2001년 초 개봉된 이 영화가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처럼 1분 1초를 다퉈가며 사는 주인공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개봉 당시만 해도 택배업이 지금처럼 일상화되지 않아 더욱 신기해 보였던 것 같다.
택배 서비스가 우리나라만큼 발달한 곳도 지구상에 찾기 힘들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 때문일 수 있다. 배달의 민족이라서 그렇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총알처럼 빠른 배송 서비스다. 한밤중 출출함을 달래주는 간식부터 커다란 냉장고 등 가전까지 어디든지 배달해준다. 차량이 막히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는 새벽 배송 덕분에 따끈한 음식을 아침상에 올릴 수 있는 세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소비가 급증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빠르고 값싼 택배 서비스는 더욱 가치를 발휘했다. K방역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택배 서비스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분석도 과장은 아니다.
택배시장은 온라인 유통시장의 확대와 맞물려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총 택배 물량은 2000년 약 2억개에서 지난해 25억4000만개로 급증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쇼핑 이용이 늘면서 올 상반기에만 16억800만개를 기록했다. 이 같은 고속 성장이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낳게 된 것을,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 뒤늦게 알게 됐다. 생활 물류시장에서는 지난해부터 택배 배송 근로자들의 과로사가 이어졌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달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선정릉 대리점 기사 김모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과로사위)'에 따르면 올해 택배기사, 물류센터 인력 등 모두 15명이 과로로 숨졌다. 업체 간 과당 경쟁으로 택배업체들은 택배 운송단가를 내리고, 이는 이익률 저하와 택배기사들의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분석한 택배 배송단가는 2000년 3500원에서 2019년 2269원으로 떨어졌다. 택배기사들은 건당 700~800원의 수수료를 챙긴다.
일반 사업자인 배송기사들 일에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방치하던 대형 택배회사들은 분류 지원인력 증원, 심야 배송 폐지, 시간 선택근무제, 산재보험 가입 및 건강검진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작 핵심적으로 다뤄져야 할 택배 수수료 인상에 대한 얘기는 아직 없어 아쉽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당정이 나서서 대책 마련을 하고 있지만 택배 수수료 인상이 되레 택배회사들의 이익만 늘려주는 꼴이 안 되도록 현장 근로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할 것이다.
비대면(언택트) 선호 현상으로 하루 24시간 택배 배송 물량은 갈수록 늘고, 택배 현장 근로자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배송차에서 쪽잠을 자고, 식사를 거르는 등 과로가 일상화된 택배 근로자들이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일선 택배 근로자들은 연차나 월차 등의 휴가도 없이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15~16시간을 토요일 포함 주 6일 일한다. 죽도록 힘들어도 몸을 움직이면 수입이 생기고, 쉬고 싶어도 대체할 비용 부담이 커서 쉴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목숨을 담보하며 노동에 나서는 것보다 적절하게 일하고 그에 맞게 소득을 올리도록 하는 것이 합당한 해결책일 것이다. 업무 성격에 맞는 적정 휴무를 공식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드론 택배나 로봇 택배가 부분적으로 도입된다지만 일상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참에 택배비 차등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시간은 돈이라고 하는데 급하게 받아야 하는 물건이나 특별히 취급해야 하는 물건이 있으면 추가로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급하지 않은 것은 천천히 받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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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좀 늦으면 어떤가. 지금까지 없이도 살지 않았나. 급한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별 문제 없는 것이 태반이다. 저렴한 택배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느긋하게 배송을 기다리면서 설레는 시간을 좀 더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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