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브룩스 '두 번째 산', 위기 통해 성장하는 인간의 삶 가리켜
개인의 야심뿐인 '첫 번째 산' 넘어 타인과 공존하는 '관계주의' 강조

[이종길의 가을귀]삶의 계곡, 길을 잃었을 때 고통의 나침반을 꺼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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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물농장', '1984'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25세에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이튼칼리지 졸업 뒤 영국 식민지 미얀마로 떠났다. 대영제국 경찰관으로 5년간 복무했다. 퇴근해 집에 돌아와서는 빈둥거리기만 했다. 글쓰기를 의식하면서도 애써 회피했다.


그는 수필 '나는 왜 쓰는가'에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격노하게 만든다는 사실, 또 앞으로 언젠가는 결국 자리를 잡고 있어서 책을 쓰게 되리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두 번째 산'은 인간이 고통의 시기를 겪으며 다시 정립하는 인생의 태도에 대해 논한다. 누구나 고통의 시기를 겪는다. 어떤 사람은 지레 겁 먹고 과도하게 움츠러든다. 슬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평생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익숙한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고통을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계기로 삼는다.


저자는 올바른 방향으로 후자를 가리킨다. 고통을 딛고 다시 시작하려면 개인ㆍ사회적 차원에서 인생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더 큰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문화적 패러다임의 무게 중심이 개인주의라는 첫 번째 산에서 관계주의라는 두 번째 산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 산은 첫 번째 산의 반대가 아니다. 첫 번째 산에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여정이다. 다만 오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첫 번째 산은 정복한다. '나'가 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다. 정상이 어디인지 멀리서 확인하고는 그곳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간다. 그런데 두 번째 산은 다르다. 두 번째 산이 '나'를 정복한다. 나는 어떤 소명에 굴복한다. 그리고 그 소명에 응답해, 내 앞에 놓여 있는 어떤 부당함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한다. 첫 번째 산에서는 야심을 품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며 독립심을 발휘하지만, 두 번째 산에서는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친밀하며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


뒤늦게 작가가 된 오웰은 방구석에서 펜만 만작거리지 않았다.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오웰은 빈민가로 가서 극빈생활을 체험했다. 사회주의자 친구들이 해방시켜주겠노라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정작 직접 접촉하지 않는 모순이야말로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잉글랜드 전역을 걸어 돌아다녔고, 자선 숙박소 등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다. 프랑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접시 닦는 일을 하루 13시간씩 하기도 했다.


그는 풍부한 경험 덕에 노동계급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밑바닥 생활 체험이 기록된 '파리와 런던의 바닥 생활'을 출간한 데 이어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의 가난한 삶에 대해 그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발표했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원 입대했다. 그는 공산주의 정당 통일노동자당의 민병대에서 활동하며 스페인 혁명을 가로막는 세력이 되레 좌익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피해 프랑스로 건너가 그간 느낀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을 '카탈로니아 찬가'에 표현했다.


둘째, 새로운 글쓰기 방식의 확립이다. 오웰은 논픽션을 문학적인 어떤 형태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우화를 이용했고, 정치적 주장을 펴는 데 있어 달인이 됐다. 예컨대 '코끼리를 쏘는 것'이 영국 제국주의의 잘못된 점을 상징하게 만드는 식이었다.


그 과정은 진 빠지는 투쟁이었다. "어떤 고통스러운 질병과 긴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다. 저항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악마에게 억지로 등을 떠밀리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웰은 미국 태생의 시인 T. S. 엘리엇(1888~1965)처럼 좋은 글쓰기의 태도가 자기 개성을 끊임없이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를 억눌러 독자로 하여금 묘사된 내용과 직접 접촉하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다.


셋째, 철저한 정직이다. 오웰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말마따나 "옳지만 패배할 수 있다는 사실, 무력이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 때로는 용기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거짓말을 폭로하거나 어떤 실제 사실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애썼다. "1936년 이후로 내가 썼던 진지한 작품의 모든 문장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사회주의에 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오웰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였다. 자기가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 깨달으면서 주어진 임무를 가차 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정화의 순간을 경험했다. 글쓰기로 모든 부당함에 화를 내고 냉정한 열정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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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산'은 이런 소명을 두 번째 산에 오르는 핵심 동력으로 본다. 결국 등반은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과정이다. 낡은 자기를 버림으로써 새로운 자기와 만나게 해준다. 그 결과물은 성공이 아닌 성장, 물직적 행복이 아닌 정신적 기쁨이다. 고뇌의 계곡에서 사막의 정화를 거쳐 통찰의 산봉우리에 이르는 것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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