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 괜찮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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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잘 맞서 싸우는 대한민국이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쓴 게 4월말이다. 사실이었고 또 지속형의 희망이었다. 귀국하기 직전에 만난 버클리 대학의 교수님은 “나도 한국으로 따라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며 웃었다. 코로나 전염 1위국의 오명을 쓴 자국의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미국을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인내심과 우리 정부의 책임 있는 방역에 대한 사심 없는 인정이었다.


귀국하여 자가 격리의 시간을 거쳤다. 자유의 몸이 된 후에는 외출도 하면서 조심조심 일상을 이어갔다. 상황이 급변하기 전까지는.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제 전선이 따로 없는 싸움이 되었다. 감염 경로를 꼼꼼히 추적, 관리하던 믿음직한 K 방역에 균열이 생겼다. 소수의 무지가 촉발한 일이지만, 그것이 전체를 위험에 빠트린다. 여전히 반성을 모르는 아집이 안타깝다. 시간을 돌리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것이고, 지금의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수도권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것은 그 때문이리라.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얼까. 괜찮다고 자족하거나, 괜찮을 거라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방역 당국이 세운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대원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어기는 일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나 하나쯤이야’ 하며 간과할 때, 횡행하는 가짜 뉴스에 판단이 흐려질 때, 지난 시간 온 국민이 장하게 견뎌온 인내가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공든 탑도 작은 돌 하나 빠지면 무너진다.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가령, ‘자가 격리’라는 말은 집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한다. 두 평 고시원이 집인 사람과 백 평 집에서 사는 사람의 ‘격리’는 다른 의미다. 좋은 집이 지옥인 사람도 있다. 거기서 각자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를 더 세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미국에서 우리나라 3단계에 해당되는 봉쇄령을 ‘Shelter at Home’으로 완화하여 표현한다. 그 말을 들으며 집이 쉼터가 되지 못하는 이들과 집 없는 홈리스들은 어쩌나 싶었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홈리스들이 큰 고민이었는데, 시 당국은 지역의 호텔과 협약하여 이들을 무료로 수용했다. 어려운 결단이었지만 코로나에 무방비로 노출되던 이들이 뒤늦게나마 국가의 보호망 안에 안겼다.

바이러스는 빈부 격차 없이 파고 들지만, 감염병은 차별과 배제를 한층 심화시킨다. 재앙이 일어날 때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것은 가장 힘이 없는 이들이다. 이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생계가 곤란해진 자영업자들, 홈리스들, 학교 밖 청소년들, 온라인 환경에서 배제되는 노년인구 등을 더 세심히 보듬을 수 있는 유연하면서도 적극적인 정책을 기대한다. 모임과 만남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경계와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 또한 필요하다. 작은 아이디어지만, 갇힌 일상을 사는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숨통이 더 트이도록 산책로나 둘레길을 ‘일방통행로’로 개선하여 걷는 자유를 좀 더 주면 좋겠다. 뛰면서 내뿜는 포말에도 전염 가능성이 있다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고 뛰는 이들을 좁은 산책로에서 마주할 때는 아찔하다.


지금 이 상황이 괜찮지 않다는 것, 재앙을 통과하는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연대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정립되어야 한다. 금방 옛날로 돌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 대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설령 이 재난이 끝나더라도 재난 뒤의 또 다른 재앙을 맞을 것이다. 괜찮다는 거짓말을 자각하는 일. 아집을 두려워하는 일. 공생하는 삶에 대한 모색. 희망은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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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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