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벌주지 마세요" 피해 아동의 '부모 선처' 막을 수 없나
아동학대 사건 속출…처벌은 솜방망이
전문가 "아동학대 특이성 이해한 전문 인력 배치해야"
지난달 3일 의붓아들 A(9)군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의붓어머니가 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 인턴기자] 끔찍한 학대 피해를 겪은 아이들이 가해자인 부모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선처를 해달라고 나서 가해자의 처벌 수위가 낮아지고 있어,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자신을 잔혹하게 학대한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부모여서 엄격한 법 처벌을 제대로 호소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감수성과 특수성을 인지한 전문인력 배치를 통해 피해 아동과 가해자를 즉각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267건이다. 이 가운데 유기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12%), 집행유예는 96건(36%)이었으며, 나머지는 벌금형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요인 중 하나는 학대 피해 아동의 선처다.
최근 숙제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11살 딸 입에 공책을 찢어 욱여넣는 등 학대를 한 30대 엄마 A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제주지법 형사3단독(박준석 부장판사)은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39살 A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5차례에 걸쳐 딸 B양을 학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B양이 숙제를 잘하지 못하고 집에 늦게 들어와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피해 아동은 엄마의 지속적인 학대에도 선처의 뜻을 밝혔고,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또 다른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피해 아동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부모인 어머니에 대해 선처를 호소했다. 지난해 5월 광주에서는 수년간 자신의 딸을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어머니가 자녀의 선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아동학대 행위를 반복한 데다 위험한 물건으로 학대했다"며 "다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점, 피해자가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아동이 다시 사건이 발생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와 다시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사건 발생 당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사실상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학대 통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접수된 학대 사례 2만4604건 중 82%(2만164건)는 피해 아동이 학대가 발생한 가정에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과 치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쉼터에 입소하는 등 가정에서 분리되는 경우는 13.4%(3276건)에 그쳤다.
최근 충남 천안과 경남 창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도 피해 아동이 끝내 사망하거나, 목숨을 걸고 밖으로 나와 구출을 요청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충남 천안의 C(9)군은 7시간 넘게 여행 가방에 갇혀 있다가 숨졌다. 피해 아동은 지난 1일 오후 7시25분께 천안시 서북구 자택에 있는 여행용 가방 안에서 장시간 갇혀 있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C군은 계모(43)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해왔다. C군은 숨을 거두기 전인 지난달 5일 머리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의료진은 C군의 몸에 난 상처 등을 보고 아동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한 것을 전해졌다.
하지만 C군이 친부와 떨어져 지내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아 분리조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창녕 여아 D(9)양을 잔혹하게 학대한 사건도 천안 사건과 마찬가지로 학대 정황이 포착된 가구였다. 해당 가구는 지난 1월 학대 가능성이 있는 '위기 가구'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현장조사가 어려워 사실상 학대에 방치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전문가는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피해자와 가해자의 즉각 분리조치와 전반적인 수사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피해 아동들은 부모가 가해자일지라도 당장 돌아갈 곳이 집이라는 생각 때문에 선처를 바라거나 학대를 당하고도 집에 돌아가겠다고 한다"며 "아동이 그냥 집에서 살겠다고 했다는 말만 듣고 무조건 그냥 돌려보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 대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호 프로그램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특수성을 잘 알고 있는 전문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며 "경력 있는 상담원을 배치해야 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대해서 철저하게 관리 감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정부는 '학대 위기아동'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석 달간 학교 장기결석 아동 등 2만5000명을 직접 만나 학대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또 재학대를 막기 위해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던 아동 8천500명에 대해서도 특별 점검을 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다음 달 1일부터 아동학대 위기 아동을 선제적으로 발견하기 위한 집중점검을 시작한다고 24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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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득영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위기 아동을 파악하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이번 점검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겠다"면서 "주변에 학대받는 아동이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발견할 경우 경찰에 적극적으로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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