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강제추방 당해도 한국 사랑한 네팔 아저씨
“오늘은 나의 월급날/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한참 동안 받지 못했던/월급을 돌려준대요/나의 소중한 가족들/사랑하는 부모님/이제는 나의 손으로/행복하게 해줄게요.”
지혜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미누’에서 미누(네팔 이름 미노드 목탄)는 목장갑을 끼고 노래한다. 제목은 ‘월급날.’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서글픈 삶이 담긴 가사를 경쾌한 리듬으로 풀어낸다. 그는 지 감독의 영화 촬영 요청에 응하면서도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자기를 불쌍하게 그리지 말라는 당부였다. “우리를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미누는 네팔 출신 1세대 이주노동자다. 스물한 살이던 1992년 한국에 들어와 17년 동안 궂은 일을 했다. 그는 정부가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에 앞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하자 목장갑을 끼고 시위에 앞장섰다. ‘단속을 멈추라’는 뜻의 ‘스탑 크랙다운’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주창했다. 미누는 2009년 강제추방을 당했다. 그는 한국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그리워한다. “한국인인 줄 알았어요. 그런 착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진짜로요.”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약 50만명. 대다수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근무한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인권이 향상됐다지만 여전히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부 사업주은 필요에 따라 추방할 수 있는 불법 또는 편법적 존재로 취급한다.
이주노동자 대다수는 합법적인 경로를 거쳐 한국에 들어온다. 그러나 까다로운 법에 발목을 잡혀 적잖은 수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전락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한 번 사업장이 정해지면 고용허가가 만료되는 4년 10개월(기본 3년·연장 1년 10개월) 동안 일터를 바꿀 수 없다. 성실 근로자 재고용 제도를 이용하면 4년 10개월이 추가돼 최장 9년 8개월 동안 한 사업장에서만 일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주가 근로 조건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당한 경우에만 고용센터 심사를 통해 일터를 바꿀 수 있다. 이런 사유가 아니라면 사업주의 허가가 있어야만 한다. 그 회수는 3회를 초과할 수 없다. 까다로운 제약은 사업주에게도 적잖은 손실이다. 오랜 시간 숙련공으로 키워낸 이주노동자를 다른 사업장에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와 불법으로 연장 계약을 맺어 생산력을 유지하곤 한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인력도입의 투명성은 높아졌으나 무급 및 불법 노동에 내몰리는 현실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이주노동자는 근로조건이 실제와 다르더라도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없다. 의료보험 등의 혜택도 기대할 수 없다. 고용센터도 갈 수 없으며, 최악의 경우 일한 만큼 대가도 받지 못하고 강제 출국당할 수 있다.
이주공동행동 등 이주인권 단체들은 지난 3월 외국인고용법 제25조 등 사업장 변경제한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현행 고용허가제가 사실상 강제노동을 조장한다고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소원 취지에 대해서는 “사업장 변경에 대한 규제는 의사에 반하는 강제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포함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의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근로자의 불법 노동시장 이탈을 막으려면 그들의 권리부터 우선시돼야 한다. 그 시작은 존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었을 때 우리는 한국인 실업자들의 일자리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강제로 내보냈다. 결과는 실패였다. 빈자리를 내국인 노동자들이 채우지 않아 다수 중소기업이 어려움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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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시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일한다. 한국 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의 이웃이다. 미누가 두 눈을 감을 때까지 한국을 그리워한 건 그렇게 나눈 정 때문이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입국을 거부당해도 한국을 사랑했다. 이 영화가 2018년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어렵사리 한국 땅을 밟았을 때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이제 죽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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