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밝혀진 역사성 등에 주안점 두고 '서울 성북동 별서'로 재지정 추진

고증 오류 밝혀진 성락원, 이름 바꿔 명승 재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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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명칭과 근거로 국가지정문화재가 돼 논란이 일었던 별서(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성락원’이 결국 명승 지위를 잃었다. 새롭게 밝혀진 문화재적 가치를 토대로 재지정이 추진된다.


문화재청은 24일 열린 문화재위원회(천연기념물분과)에서 ‘성락원’에 제기된 지정 명칭 및 근거의 오류를 받아들이고 명승 지정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새로 밝혀진 역사성과 수려한 경관, 학술 가치 등에 주안점을 두고 새 명칭인 ‘서울 성북동 별서’로 재지정을 추진한다.

그간의 조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내린 조치다. 이 별서는 2008년 명승 제35호로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청은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별서를 조성하고 고종의 아들 의친왕이 별궁으로 사용한 점 등을 역사적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관련 문헌 및 자료를 조사하고 자문회의 등을 열어 검토한 결과, 심상응은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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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서를 조성한 사람은 고종 때 내관을 지낸 황윤명(1844~1916)이었다. 주된 근거는 황윤명의 차손 안호영이 그의 시문을 모아 발간한 유고문집 ‘춘파유고(春坡遺稿).’ 수록된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 시문이 성락원내 영벽지 각자와 일치했다. 오횡묵이 관리로 있던 곳의 현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총쇄록(叢?錄)’도 이를 뒷받침했다. 황윤명이 조성한 별서를 1887년에 방문했다고 기록됐다.

문화재청은 갑신정변(1884) 당시 명성황후가 황윤명의 별서를 피난처로 사용했다는 사실도 일편단충(一片丹忠)의 김규복 발문과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확인했다. 일편단충은 명성황후가 갑신정변 뒤 김규복, 황윤명 등에게 직접 써서 나눠준 것이다. 김규복이 붙인 발문에는 ‘혜화문으로 나가 성북동 황윤명 집으로 향했다’, ‘태후, 왕비, 세자께서 이미 어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등의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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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지난달 새롭게 드러난 역사성과 경관성, 학술성 등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재조사했다. 그 결과 자연 계류와 지형, 암석 등이 잘 어우러져 있고, 한국전통 정원 특유의 미학까지 반영됐다고 봤다. 단 일부 원형복원이 미흡한 부분은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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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심의를 거쳐 명승 지정해제 및 재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아울러 이미 지정된 별서 스물두 곳에 대한 역사성, 지정기준 등을 재검토할 방침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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