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베개에 묻을 만큼 오래 잠들고 싶던 날

나는 귓구멍에서 내 가려운 잠을 파낸다


모두 뭉근한 불 위에 누웠던 때가 언제였을까

한 이불에서 발을 뻗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혼자 왔다가, 혼자가 아니었다가, 혼자가 아닌 줄 알았다가, 혼자가 아니고 싶다가, 결국 혼자가 되는 삶들을 건조대에 널던 오늘은 달과 지구의 공전 거리가 가장 멀었다

행성과 위성이 멀어도지고 가까워도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가족이 살고 있었고

나는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았다

가족의 달에는 가족도, 가족 없는 희망도, 희망 없는 가족도 있으니 우리는 꼭 희망이 없이 살아도 나쁘진 않겠지 그것은 단어에 불과하고 오타에 가까울 테니

가령 살아,라고 쓰다 사랑,이라고 쳤을 때 언제든 어떻게든 삶은 실수이고 그래서 아름다워 보였듯이, 내가 글을 쓰는 게 다행인 때가 있었듯이


잠 속에서

잠 밖에서

또는 마지막 이승에서

더 많은 봄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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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오월/류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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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삶을 사랑하세요. 그리고 끊임없이 생존을 표명하세요." 이 문장은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남긴 유언 중 일절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이 문장의 원문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삶"과 "생존"이 같은 말인지 혹은 좀 다른 말인지, 그리고 "생존"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또한 "그리고"가 단지 두 문장을 잇는 접속사 기능만 하는지 아니면 등치 관계를 이루는지 또는 동시적 사태를 함의하는지 그 역시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단지 추상이거나 관념이 아니라 "표명"과 같이 이미 동사적 사건이라는 생각은 든다. 어쩌면 시에 적힌 대로 "삶은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래서" 삶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또한 비록 "실수"로 유발되었을지라도 '살다'와 '사랑'이 겹쳐질 때 우리의 생은 비로소 문득 아름다울 가능성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글쓰기는 그러한 "실수"가 무수히 탄생하는 장소다. 아니 언제나 그래야만 할 것이다. 데리다가 알려 주었지 않은가. '사랑'은 "늘" "끊임없이" 이행해야 할 윤리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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