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변혁]대형 증권사, 순식간 추락할 수도...선제적 시스템 정비 필요
글로벌 증시 폭락에 흑자 도산 가능성...사전에 유동성 공급 정책 마련해야
[아시아경제 박지환 기자] "일부 대형증권사의 3월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선물증거금 추가 요청) 위기 당시 정부가 나서서 10억달러(약 1조2270억원) 규모의 달러 긴급 수혈을 통해 외화유동성을 공급해주지 않았다면 현재 이들 회사의 주인은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본시장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증권사들조차 국제 금융시장 붕괴로 위기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한 선제적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증권업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글로벌 확산에 따른 전 세계 증시 폭락으로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흑자도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ELS와 파생결합증권(DLS)의 기초자산 격인 해외 선물이 급락해서다. 유로스톡스50지수ㆍS&P500지수 등 해외지수 급락으로 선물에서 마진콜이 발생했고, 국내 증권사들은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의 달러 증거금 추가 요구로 일시적 달러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증권업계에는 정부의 달러 유동성 공급 외에도 천운이 뒤따랐다. 지수가 급격히 떨어진 만큼 회복도 빨랐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우려가 커지면서 유로스톡스50지수는 지난 2월20일 3867.28에 고점을 찍은 후 3월16일에는 2302.84까지 40% 이상 곤두박질쳤다. 이후 일주여일 만인 3월24일에는 2715.11로 18% 오르는 등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예기치 못한 충격이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다며 대규모 악재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증권은 순자본비율(NCR), 보험은 지급여력비율(RBC) 등을 통해 자본 건전성을 정기적으로 점검받고 있지만 이번처럼 대형 위기에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증명됐다. 실제 국내 증권사들의 NCR는 모두 금융당국의 권고치인 200%를 크게 웃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증권업계의 순자본비율은 559.1% 수준이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상적인 상황과 비정상적인 상황을 구분해 사전에 미리 위기 대비책을 준비해놔야 한다"며 "기존의 NCR, RBC, BIS 등의 지표로는 건전성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이들 기준 자체가 정상 상황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을 인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제가 터지고 나서 부랴부랴 대책을 찾기보다는 선제적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위기 상황에 처한 기업들에 유동성을 긴급 공급할 수 있는 장치를 이번 기회에 정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마자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 외화증권 매입 프로그램 등이 곧바로 발표됐다"면서 "재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공급하고 신용위험은 미국 행정부가 맡는다 등의 관련 사항에 대해 사전조율이 모두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야 일이 터지고 나서 논의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 3월17일(현지시간) CP시장에 대한 유동성 투입계획을 발표했다. 미국보다 코로나19 확산을 먼저 겪었음에도 국내에서 회사채ㆍ단기자금시장 안정화 지원책이 발표된 것은 이보다 1주일가량 뒤였다.
황 연구위원은 "CP 매입, 회사채 매입, 유동화증권 그리고 은행대출연장프로그램 등 대규모 유동성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사전 조율을 마쳐놓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유명무실화돼 있는 자산매입 후 임대프로그램(세일즈앤드리스백)의 활용 방안도 다시 찾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 교수는 "무작정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보다는 기업의 동산을 정부가 우선 사주고 이를 다시 빌려주는 방식으로 기업의 자금 융통성을 터주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 "기업 동산에 대한 가치평가가 어려운 점이나 현금화시장 부재로 처분하기 어려운 점 등은 정부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리스크 관리 체계 점검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규제 옥죄기는 악역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린 아이가 넘어졌다고 일으켜 주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이상으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등 원천봉쇄식 규제로는 업계 경쟁력을 오히려 낮추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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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증권사의 한 임원은 "미래에셋대우가 앞으로 100조원 규모로 자본이 커졌다고 해서 갑자기 골드만삭스처럼 될 수는 없다"면서 "실제 성과를 내기까지의 다양한 부분에서의 실수와 경험을 통해 글로벌 IB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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