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형의 오독오독] 민주주의는 시험의 연속이다
대학입학 시스템으로 정시와 수시 중 무엇이 더 공정한가. 흔히들 대체로 전자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기준으로 만든 시험을 동시에 치르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경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후자가 더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근거가 있다. SKY 합격자를 분석해 보니 일반적 생각과 달리 강남 합격자 비율은 정시가 수시보다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전자는 기회의 평등을, 후자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 가산점, 할당제도 같은 논쟁거리가 있다. 기회의 평등만 보장하면 양극화는 막을 수 없다. 결과의 평등에 중점을 두면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역차별 논란도 있을 수 있다. 무엇도 완벽한 제도일 수 없다. 그때그때 사회적 합의로 어떤 곳에 힘을 실을지 결정하는 수밖에…. 조국 사태로 수시 문제가 불거진 뒤 정시 비율을 더 늘리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정책 입안자들이 응답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애스트라 테일러가 쓴 '민주주의는 없다'는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하지만 저자는 민주주의가 없다고 주장한다. 역사상 완전한 민주주의가 실현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흔히들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부르는 아테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상징인 미국은 모두 노예제로 경제적 안정을, 특권화로 민주주의를 구축했다. 반민주로 민주를 이루는 역설. 여기에 민주주의를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속성이 존재한다. 5000만명이 있다면 5000만가지의 민주주의가 있다. 최순실도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특검을 부르짖지 않던가.
'민주주의는 없다'는 민주주의의 속성을 크게 8장으로 나눈다. 장마다 대립하는 요소들로 구성돼있다. 자유와 평등, 갈등과 합의, 포함과 배제, 강제와 선택, 즉흥과 체계, 전문지식과 여론, 지역과 세계, 현재와 미래가 그것이다.
저자는 두 주제 가운데 한 쪽에 분명한 선호도를 표시한다. 그러나 반대 쪽과 적정한 균형을 맞추는 게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균형을 찾기 위해 숱한 시험에 놓여야 하는 게 민주주의의 숙명이다.
우리는 지금 날마다 새로운 민주주의 시험을 치르고 있다. 자유 대 자유, 자유 대 평등 가운데 뭘 선택할 것인지가 숙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마음대로 생활할 자유를 보장할 것인가, 통제할 것인가, 누구나 검사받을 수 있게 할 것인가, 검사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지난 넉 달간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거대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자유를 좀 더 보장하고 경제활동에 다시 나서려는 순간 우리는 또 집단감염과 맞닥뜨렸다. 이제 인권이냐 보건이냐, 한발 더 나아가 성소수자의 신원 비밀 보장이냐 강제 검사냐를 두고 논쟁하고 있다.
저자는 시민들의 자치를 "이상이자 원칙이며 항상 멀리 있고 자꾸만 뒤로 물러나는 지평선에 걸려 있는 것, 보통 사람들의 부단한 각성, 창의 그리고 투쟁을 통해서 이룰 수 있으며 포기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모순과 기회들을 수용하며 부단히 긴장 속에 사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실천한 사례가 있다. 방송인이자 요식 사업가인 홍석천씨다. 그가 유명인이라지만 한 개인일 뿐이다. 본인이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최근 이태원 사태와 관련해 용기를 냈다. 그는 "아우팅에 대한 걱정이 크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본인과 가족, 사회의 건강과 안전이 우선입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우리는 스스로 뽑은 대통령을 스스로 끌어내린 경험이 있다. 이로써 오래 걸리고, 다소 지루하며, 때로 역주행하는 과정까지 거칠지언정 민주주의는 결국 정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세계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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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없다/애스트라 테일러 지음/이재경 옮김/반니/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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