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관장

김보라 관장

AD
원본보기 아이콘

멈춤의 시기를 보내면서 오히려 사람들과 마음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다. 작은 만남도 귀하게 여기고 그냥 지나치던 옅은 미소는 큰 의미가 되기도 한다. 침묵의 울림이 가슴에 스며들면서 참 모습들을 직시하게 된 걸까. 소소한 몰입이 조금 더 오랫동안 바라보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역 인근에 부르델미술관이 있다.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1861~1929)이 40년 넘게 살았던 집과 아틀리에를 시립미술관으로 개관한 곳이다. 아틀리에는 부르델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대로 보존돼 있다. 흙을 반죽하던 작업대, 낡은 의자는 작가와 함께 움직임이 멈춘 듯 놓여 있다. 다양한 조각 도구는 다시 돌아올 예술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흐릿한 과거의 조명은 아련한 그 시절을 소환한다.

부르델의 아틀리에는 주인이 떠난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은근한 숨을 이어가고 있다. 아틀리에 앞에는 비밀을 간직한 듯 작은 정원이 숨겨져 있다. 초록빛 싱그러운 나무들 사이로 다가오는 부르델의 작품을 마주하면 숨이 멎을 듯하다. 작품들에 압도당하기 일쑤다.


고전적 형식미로 공간을 치고 오르는 부르델의 웅장한 역작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념비적 작품들 사이에서 한 줄로 늘어선 여러 얼굴이 필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니 말이다.

여기선 뜻하지 않게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과 만나게 된다. 부르델이 베토벤의 얼굴을 다수 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부르델은 1887년 베토벤 음악과 접한 뒤 작고할 때까지 수십여 점에 이르는 베토벤의 조각상ㆍ드로잉을 제작했다. 긴 전시실에 놓인 작품들은 각기 다른 시기, 다른 표정, 다른 감정의 위대한 음악가이자 한 인간인 베토벤을 표현하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을 매우 사랑한 부르델은 조각과 음악의 동질성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고뇌 속에서 살다간 음악가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처음에는 베토벤의 보이는 모습을 찾기 위해, 시간이 지나선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형체에서 무한한 영혼의 자유를 찾을 때까지 매진했다. 차가운 물성의 브론즈로 영혼이 깃든 얼굴을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부르델은 "예술이 마음을 담기 위해서는 손이 떨리도록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흙이 빚어지는 자기 손에 자유를 허락했다. 결국 베토벤의 형상은 비장함을 넘어 초월적인 생명을 부여받게 됐다. 신화를 벗어난 위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의 마지막 피아노가 놓인 독일 본 소재 생가나 그가 청력 상실 뒤 유서를 쓴 오스트리아 하일리겐슈타트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모습이다.


부르델은 40여년간 베토벤을 바라봤다. 한 사람을 향한 오랜 마음이 그의 진실된 모습을 찾아가는 오랜 여정이라면 여기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 조각가 부르델에게 창작의 고뇌는 공감의 초석이 되고 음악가의 모습 속에 자신을 투영하도록 이끌었다. 부르델이 베토벤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사람을 만나 이해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이는 타인에게서 자화상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올해는 베토벤이 태어난 지 250년 되는 해다. 음악으로만 만나던 그에게 올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사람의 깊이를 몇몇 이미지로 단순화할 때가 있다. 때로는 역사가 부각해온 고착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겹겹의 시간 속에서 새로 생성되거나 사라지기도 하니 잠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분명 전과는 다른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AD

김보라 큐레이터·성북구립미술관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