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위기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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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선언은 적지 않은 경우에 허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이 권력을 부여한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힘이 있을 때 써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권력은 쓸 데 써야 하고 나누어야만 사회와 나라가 안정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제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씨 조선이 망한 것은 왕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사가 왕의 입을 통해야만 가능했으니 백성 스스로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제정권이라고 해서 백성이 권력의 기반임을 몰랐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권력의 집중에만 몰두한 나머지 권력의 뿌리인 백성의 풍요가 곧 나라의 풍요라는 인식 또한 부족하였던 것이다.

권력의 집중은 위험한 것이다. 조선이 얼마나 허망하게 국권을 상실하는지 그 과정을 보시라. 왕과 그 주변 몇몇 대신을 총칼로 위협하니 너무나도 쉽게 나라를 남의 나라에 넘긴 것 아닌가. 전제국가에서 나라는 개인의 사유물이나 다름없다. 극도로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나라를 탈취하는 것은 그만큼 쉽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안중근 의사의 의거나 의병의 저항과 같은 역사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러나 민초가 더 큰 저항을 할 수 있기에는, 전제의 그늘 아래 더 큰 능력 함양이 어려웠던 것이다.


권력의 집중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는 신대륙이 스페인의 야심가들에게 정복돼가는 과정에서 여실히 엿볼 수 있다. 멕시코의 마야도, 안데스의 잉카도 모두 신정국가였다. 왕이 곧 신이었으니 권력의 집중도는 알만 하다. 16세기 초에 인구가 2500만 이상이었다니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의 몇 십만 대군은 몇 백 명의 스페인 군대에 의해 정복당했다.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신을 제거 당하고는 힘없이 무너졌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대런 아세모글루(Darren Acemoglue)와 같은 학자는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체제를 착취적(extractive)이라고 부른다. 나라의 역량은 분권과 자립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헌법에 삼권분립을 규정한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건국과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에서 현대적인 국가와 번영을 찾듯이 권력이 집중되어 있을 때의 번영은 항상 한계가 있다. 건국 이후 2세기 반 가까이 번영하고 있는 미국의 거울에 비추어 볼 때 중국이나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치적 변화는 그런 의미에서 우려할 만하다.


뜬금없이 권력의 집중을 말하는 것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위기를 지나면서 느끼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직 대한민국이 먼 과거 전제정권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 질 때가 있다.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국회도 법원도 언론도 모두 그의 입과 행동만 주시한다. 하다 못 해 마스크의 대리 구매도 대통령이 지시해야만 가능하다. 먼 과거의 누군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세계는 지금 큰 위기를 지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닥쳐올 경제적인 위기는 2008년의 금융위기에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기에 빛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역량이다. 국민에게 보다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육이고 나라를 지탱하는 자산이다. 많은 경우 위기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지만 그것을 심화시키는가 아니면 극복하는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코로나로 어려움에 처한 모든 국민들께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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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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