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커피에 환장한 여자가 되어 본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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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어느 이른 아침 한 공공기관의 입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진입을 시도하다 청원경찰의 단호한 한 마디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플라스틱 컵 반입 안됩니다."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2분여의 시간 동안 컵에 가득 찬 커피를 마셔보자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카페인 음료를 단숨에 들이켜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 불현듯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꼭 이러한 방식이어야 하나. 궁금한 것은 물으라 배웠으니 입구로 돌아와 질문했다. "그런데 이걸 꼭 버려야 하나요. 저…" 휘말리고 싶지 않은 제복의 청자(聽子)는 서둘러 고개로 중년의 남성을 가리킨다. "저 분한테 말씀하세요." 두어 발걸음 건너편, 한숨을 푹 쉬는 관리자 셋.

잔을 두 손으로 꼬옥 쥐고 다시 물었다. "커피를 꼭 버려야 하나요." "하아…반입 안돼요, 여기서 마시던가 버리세요." "플라스틱 저감이 필요하단건 잘 알고 열심히 지켜왔지만요, 어디까지나 권고여야 하지 강압하실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이건 범 국민적 운동이고요! 가지고는 못 들어가요!" 언성이 높아진다. 주변에서도 쳐다보기 시작한다.


어째서 액체는 뱃속에, 컵은 밖에 내버리고 실내로 들어가야 하는가. 일과에 커피가 필요한 개인의 기호와 일회용컵을 들고 올 수밖에 없었던 이날의 사정은 존중 받을 수 없단 말인가. 다시 묻는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데 강요하실 수는…" "아니! 이렇게 까지 해서 커피를 마셔야겠습니까!"

순식간에 영화처럼 변신의 회오리가 일었다. 공공기관 출입자와 청원경찰이 아니라 커피에 환장한 한 사람과 플라스틱 반입을 막아야만 하는 한 사람만이 마주보고 서있다. 또는 자유 수호자와 철없는 진상 민원인을 만난 직업인일수도. "커피 문제가 아니라 강제할 근거는 없는 게 아니냐는 말씀을…"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표정의 상대방이 외친다. "아, 지구가 아프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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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겁게도 두 사람의 대치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 지구가 아프다는 데 도리가 없다. 근처에 커피를 버린 뒤 별도의 수거통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최후진술을 하고 돌아서는 등 뒤로 싸가지 운운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후에도 때때로 그날을 생각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플라스틱 컵을 문 바깥쪽에 버리면 앓던 지구가 안 아파 진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내가 지키려던 것은 아이스아메리카노였던가 자유였던가 순간의 자존심이었던가.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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