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캐서린 할머니는 당뇨, 고혈압, 만성 신부전으로 4가지 약물을 매일 복용하고 있다. 가정방문 투약 관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약사가 직접 방문해 약물 관리 검토를 정기적으로 하고 그 결과를 담당 의사에게 전송한다. 이를 바탕으로 의사는 할머니에게 과잉 처방되는 약물은 없는지, 약 복용에 문제는 없는지 점검하게 된다. 캐나다의 메리 할머니도 당뇨, 고지혈증, 골다공증을 진단받고 4가지 약물을 매일 복용하고 있다. 전문 약국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이는 관련 교육을 받은 약사를 통해서 약물 복용 중 부작용이 발생하면 담당의사에게 이를 알리고 환자의 전체 투약 내역을 전송하는 서비스이다. 반면에 한국의 김말래 할머니는 3년 전만 해도 매일 복용하는 약물이 7가지였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복용하는 약물이 증가하더니 현재 건강보조제와 한약까지 포함해 13가지 약물을 먹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노인은 전체의 46.6%인데 이 가운데 부적절 처방은 47.0%라고 보고됐다. 복용하는 약물이 증가할수록 입원과 사망하게 되는 확률은 오히려 늘어난다. 11개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노인은 2개 이하의 노인보다 입원 확률이 45% 증가하고 사망 위험도 54% 늘어난다는 것이다.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은 비상이 걸렸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의료비, 높은 의료 접근성, 원하면 의원ㆍ병원 가리지 않고 동시 다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훌륭한 의료보험체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이지만 그 결과 불필요한 약들이 남용되거나 중복처방돼 10개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꽤나 흔한 현상이 돼버렸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올바른 약물이용지원을 위한 사업'을 통해 약사와 함께 가가호호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취약한 대상자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복용 약물 줄이기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 '국민'도 변해야 한다. 약물을 항상 그대로 동일하게 먹어야 아프지 않는다는 믿음, 혹시나 약을 줄여서 없던 증상이 나타날까의 불안과 두려움, 비타민ㆍ혈액 순환제는 기본으로 먹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맹신, 이러한 국민성은 보건의료인들이 약물을 정리해주려는 의지를 꺾어 버리기도 한다. '의사'도 변해야 한다. 약물의 부작용으로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메스꺼움, 수면장애, 입마름증, 변비, 배뇨장애 등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내원 시에는 꼼꼼한 약물 점검을 통해 약을 오히려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약물 처방 시 '이 약이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약물인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하고 필요한 기간에만 처방하되 알려진 이득이 없는 약은 매번 환자 방문 시 정리 대상 1호가 돼야 한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진료실에서 10가지 약물의 종류를 파악해 부작용과 약물 상호작용을 확인하고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는 의료행위가 단순히 선심성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모든 의료기관의 보편화가 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정책 마련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 했던 한국의 김말래 할머니는 매일 13가지의 약물을 복용하다가 어지럼증, 식욕감퇴, 배뇨장애가 발생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노인병 클리닉을 방문하게 됐고, 약 정리를 받은 후 4가지 약물만 복용한 결과 증상이 호전됐다. 평소 복용하는 약물이 어떤 것들인지 잘 모르고 계셨던 할머니는 이번 기회에 약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게 됐고 꼭 필요한 약을 정확하게 복용하는 습관을 가지게 돼 몸이 더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 추석 때에는 우리 가족 어르신들이 가지고 있는 질환의 개수, 복용하는 약물의 개수를 서로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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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영 한양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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