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곧 기회…"日로부터 기술 자립 충분히 가능"
韓도 2009년 일본 의존도 낮추며 극복한 경험 있어
日도 中의 희토류 수출 제재 당시 기술 자립으로 극복
김용석 한국화학연구원 고기능고분자연구센터장이 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공동 주최로 열린 '글로벌 산업패권 전쟁과 한국의 기술주도권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소재부품 분야 취약성 극복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핵심 소재의 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이 오히려 우리나라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미 기술을 확보하고도 판로를 뚫지 못한 국내 기업들을 적극 발굴하면 빠르게 기술 자립이 가능하다는 전략이다. 이와 동시에 일본 외 국가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판로를 찾는 한편 한국 제품 조달 차질로 타격을 입을 미국 등과 공동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석 한국화학연구원 고기능고분자연구센터장은 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경제 생태계: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세미나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함께 주최하고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한국화학연구원이 주관했다.
김 센터장은 현 상황을 수출 규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 상태'라고 규정했다. 때문에 정치·외교적 해결 방안만큼 자력 대응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의 3대 핵심 소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할 수 밖에 없는 시기라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한국은 이 같은 사태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성인쇄회로기판의 핵심소재인 연성동박적층판(FCCL)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센터장은 "2009년 엔화(貨)가 강세인 기간이 이어지며 전통적으로 일본 업체들이 장악했던 FCCL의 가격이 두 배 가량 올랐다"며 "이에 부품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업체들을 찾았고 마침 원천기술을 확보했지만 판로를 확보 못했던 국내 기업들이 6개월만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8년 SKC와 코오롱 간 합작사인 'SKC-코오롱PI'는 출범 직후 국내 시장 점유율을 절반 이상 차지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지난해 매출은 2455억원, 영업이익 605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을 25%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일본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노선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김 센터장은 "일본은 전자제품, 친환경 자동차 등의 필수 원료가 되는 희토류의 약 90%를 중국에서 조달해 사용했지만 2010년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 당시 중국이 희토류 수출 금지 카드를 꺼내들자 큰 위기에 처했다"며 "이에 일본은 희토류 해외 조달 루트를 베트남, 호주 등으로 다각화하는 한편 희토류 재활용 기술, 희토류 사용 필요 없는 기술 등을 개발하며 수입 의존도를 절반 가량으로 대폭 줄였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세 가지 단계의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국내 레지스트 적용 방안 강구를 꼽았다. 그는 "극자외선(EUV) 공정 장비는전 세계적으로 ASML이 독점공급 중인데, ASML이 일본 업체 JSR과 레지스트 사용 독점 계약을 맺고 있어 ASML 장비를 쓸 때에는 JSR의 레지스트를 사용해야 한다"며 "이 같은 독점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한편 국내 레지스트를 적용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의 공조도 중요한 방안으로 꼽았다. 우리나라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수급하지 못하면 미국 주요 기업들도 생산에 차질을 겪고 가격 상승 등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미국 글로벌 기업과 정부 등과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데이터센터를 유지하는 기업 뿐만 아니라 테슬라, 인텔, AMD, 퀄컴, 엔비디아 등 IT업체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장기적으로 소재 공급처를 다원화하는 한편 국내 독자생산체제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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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센터장은 선두 기업과 국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더 이상 당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핵심 소재들은 몇몇 글로벌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다. 이들이 차세대 소재를 개발한 뒤 이전 소재에 대한 규제를 적극 요구하며 결국 후발주자들이 따라잡기 힘든 독점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게 김 센터장의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이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연구비와 연구 정책 및 인프라는 상당한 수준인 반면 연구인력의 이탈이 큰 상황"이라며 "연구 인력이 안심하고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한편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나서 여러 분야에서 공통 수요가 발생하는 공통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해야 글로벌 '소재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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