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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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시간은 참 빠릅니다. 단거리 주자의 스피드입니다. 개학이다 싶으면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절반쯤 지난 것 같은데 학년 말이 코앞에 와 있습니다. 아침나절에 군대 간다고 인사한 친구가 오후에 복학신청서를 들고 나타납니다. 엊그제 신입생이던 학생이 오늘 졸업식장에 앉아있습니다.


졸업식도 일 년에 두어 번쯤 하는 것 같습니다. 이삼년 안쪽의 졸업생은 재학생과 언뜻 분간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장면입니다.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에게 습관처럼 던진 질문에, 뜻밖의 답이 돌아옵니다. "오늘 수업 끝났니?" "…저, 작년에 졸업했는데요. 지나는 길에 교수님 뵙고 가려고 들렀습니다."

이맘 때면 더욱 시간의 원근법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초점을 잘 맞춰야 합니다. 입학식이 좋은 기회입니다. 신입생들과 나이를 견주고,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들과 제가 지나온 시간을 대조합니다. 급기야 이런 깨달음이 일어날 때 정신이 번쩍 듭니다. "올해 새내기들은 20세기 공기를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로군." 태어나자마자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자라난 세대가 대학생들이 되었습니다. 책으로 읽은 것보다 컴퓨터로 익힌 지식과 정보가 훨씬 많은 이들입니다. 다른 왕조에 태어난 백성들이나 다름없습니다. 말의 얼개와 무게가 다릅니다. 사물을 재는 잣대도 저울도 낯설기 그지없습니다.


입학식은 스승과 제자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의 주파수를 일치시키는 자리.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상의 지혜는 없지요. 제 마음은 언제나 단상(壇上)을 내려가, 그들 곁에 앉습니다. 서로 마주보기보다, 그들의 시선을 좇아가는 쪽을 택합니다. 귀도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열어 놓습니다. 그들이 어떤 대목에서 눈을 번쩍 뜨고 귀를 쫑긋 세우는지 알게 됩니다. 어떤 이야기에서 하품을 하고 딴전을 피우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제 눈과 귀가 스무 살의 시간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도 확실히 느껴집니다. 젊은이들과 '시간의 빈부 격차'가 훨씬 더 커졌음을 실감합니다.

삼월은 라디오 시보(時報)처럼, 지키고 기억해야 할 시간을 일러줍니다. 해가 다르게 달라지는 젊음의 표준시간을 확인시킵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일상에서 온전히 제 소유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얼마나 많은 시차(時差)가 존재하는가."


아무튼 출발의 의식(ceremony)에 참여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길을 나서는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 지난날의 자신을 만날 수도 있는 곳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입학식장이나 결혼식장은 주말의 절이나 교회 혹은 성당을 닮았습니다. 왜곡 없는 거울과 시계가 있어서, 낯을 씻고 손목시계를 맞추기에 그만입니다.


제 선배 한 사람은 예식장에 가면, 신랑의 마음으로 주례사를 경청한답니다. 결혼생활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작은 회사의 경영자인 그는 신입사원을 직접 가르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신이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삼월이면 자주 설레고 가슴이 뛴다며 행복해합니다.


'화담 서경덕'의 일화를 소개한 '연암 박지원'의 글이 생각납니다.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그 울음의 사연이 이랬다지요. "20년 동안 앞을 못보고 살다가, 오늘 아침에 홀연히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집을 못 찾겠지 뭡니까?" 선생의 한마디가 집을 찾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잃어버린 답은 대개 스타트라인에 있습니다. 삼월에는 한번쯤 신입생, 신입사원, 신랑ㆍ신부가 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올챙이 시절을 더듬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많은 달, 어제가 '경칩(驚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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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ㆍ서울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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