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요일에 읽는 지리사]복수심이 낳은 인종청소가 진행 중인 미얀마 '라카인' 주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미얀마 서부 국경 해안지대의 라카인(Rakhine) 지역은 오늘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지역 중 하나다. 이곳에선 현재 미얀마 정부군과 미얀마 내 소수민족 로힝야족 간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로힝야족 민간인들에 대한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살이 벌이지고 있는 킬링필드의 현장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끔찍한 역사를 안고 있는 지역은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라카인은 원래 미얀마의 또다른 소수민족인 아라칸족이 살던 지역으로 아라칸족은 기원전 3000년경 이곳에 왕국을 세우고 한때 이곳부터 벵골만 일대까지 지배하는 등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나라를 세웠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서부에서는 인도 무굴제국, 동으로는 미얀마의 압박 속에 크게 약해졌고 1784년, 드디어 왕국 전체가 미얀마에 완전히 점령됐다. 하지만 이후 1823년, 사실상 인도 전체가 영국 식민지가 된 이후 미얀마 왕국과 영국군이 이 라카인 일대에서 충돌하면서 버마 전쟁이 벌어졌다. 1차 영국-미얀마 전쟁에서 패배한 미얀마는 1826년, 라카인 주 전체를 영국에 할양했다.
이때부터 로힝야 문제가 시작됐다. 영국은 라카인주 일대에 버마족과 아라칸족이 식민통치에 계속 저항하자, 벵골만 지역에 살던 뱅갈리족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켜 땅을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해 병참을 운용했다. 이들이 바로 로힝야 1세대라 불린다. 이후 미얀마 전체가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로힝야족은 100만명 이상 미얀마로 들어왔다.
이후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영국령 미얀마를 공격하면서 영국식민지에 대항하던 버마족과 손을 잡자, 영국은 로힝야족들을 무장시키고 버마족과 싸우게 했다. 이에 로힝야족들은 버마족 뿐만 아니라 미얀마 내 저항운동을 벌이던 소수민족들 대다수를 탄압하고 학살했다. 이에 버마족 뿐만 아니라 미얀마 내 130여개 종족 모두가 로힝야족을 원수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미얀마가 해방되자, 미얀마 정부는 영국정부에게 로힝야족을 데리고 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나 영국은 아무런 조치없이 철수했고, 결국 미얀마정부는 로힝야족들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일대인 라카인주 서부일대로 밀어냈다. 그러자 로힝야족들은 반군을 형성해 미얀마정부에 저항하며 각지에서 테러를 벌였다. 2012년에는 로힝야 반군이 저지른 잔혹한 테러행위들로 미얀마 내 토벌 여론이 지속됐고, 결국 미얀마 군부정권이 강경 방침을 밝히면서 전쟁이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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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따라 라카인주는 눈물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미얀마 군의 인종청소로 인해 현재까지 피난한 로힝야족은 65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대다수가 방글라데시의 난민수용소로 피난을 떠났지만, 방글라데시의 경제적 여건도 좋은 편이 아니라 어렵게 도착을 해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로힝야족들이 고통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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