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논어 위정(爲政)편 중)


자주 쓰이는 말이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의미다. 과거의 지혜를 부각하거나,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강조하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고(故) 신영복 선생은 저서 ‘강의’에서 이를 과거, 현재, 미래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방식으로 해석했다. 시간을 흘러가는 물처럼 인식하는 것에서 오류가 생긴다고 본다. 실재(實在)하지 않는 시간을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지 않고, 다만 실재의 존재 형식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이렇게 보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분절되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는 것은 결코 객관적 실체에 의한 구분일 수가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통일체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뚝 분질러놓은 다음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류의 얘기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하나의 통일체’라는 관점에서는 비뚤어진 과거를 그대로 두고 미래를 논하는 것이 모순이 된다. 곪아 있는 과거의 상처를 봉합만 해놓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쓰리지만 다시 들춰서 온전히 치료하지 않고서는 건강한 미래를 바랄 수 없는 이치다.


“온(溫)의 의미를 온존(溫存)의 뜻으로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단절이 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옛 것 속에는 새로운 것을 위한 가능성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변화를 가로막는 완고한 장애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생은 ‘지신(智新)’의 방법으로 온(溫)은 “생환(生還)과 척결(剔抉)”의 의미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1949년 1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일제라는 과거 청산을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제에 부역했던 경찰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반민특위를 습격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는 등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경찰의 지지를 업고 집권한 이승만 정부의 과거 청산 의지는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군을 제외하고 가장 큰 물리력은 경찰이었다. 결국 1951년 2월 반민족행위처벌법은 폐지됐고 체포됐던 친일 인사들은 모두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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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프랑스는 달랐다. 나치 점령하에서 일했던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단죄 작업을 실행에 옮겼다. 당시 드골은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배반자에게는 벌을 줘야만 비로소 국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2017년 가을, 한국에서 ‘협치’나 ‘화합’을 명분으로 들어 과거에 대한 조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각과 상반된다.


이른바 ‘관용론’이 고개를 들자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절대로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가을이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봄을 맞으려면 겨울을 지나가야 한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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