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보여줄 게 많았던 따뜻한 배우
불의의 사고로 떠난 배우 故 김주혁
몸 돌보지 않고 배역 몰두…다양한 작품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로 주목
'김무생 아들'이란 후광 없이 독자적 연기 세계 구축한 대중예술가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불의의 사고로 30일 숨진 배우 김주혁씨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연기하는 자세에서도 따뜻함이 드러났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배우에게 선명한 감정을 요구하는 감독도 있지만 김씨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설득되지 않으면 그런 연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무표정하다고 느껴질 만큼 담담한 톤을 유지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다. 김씨는 카메라 불이 켜질 때마다 배역이 됐다. 마음을 비우고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배역의 생각과 감정으로 표현하고 행동했다. 이 작업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작품을 시작하면 담배를 많이 피우게 된다"고 했다. "하루 세 갑은 기본이죠.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는 네 갑을 넘어가기도 해요."
김씨의 건강을 우려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영화 '공조(2017년)'에서 탄탄한 몸매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TV 예능프로그램 '1박2일' 때문이다. "프로듀서가 벌칙을 지시하면서 옷을 많이 벗기더라고요. TV로 그 모습을 보는데 몰골이 충격적이었어요. 바로 트레이닝센터로 달려갔죠." 탄탄한 몸은 연기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1년 전만 해도 90% 이상이 로맨틱코미디였는데, 공조에서 웃통을 벗은 뒤로 장르가 다양해졌어요."
김씨는 다채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TV 드라마 '아르곤'에서 정직한 보도를 추구하는 김백진을 연기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 '독전'에서 중국 마약 시장의 거물 하림을 맡아 극에 긴장을 불어넣었고, 영화 '흥부'에서 조혁을 맡아 고전문학 특유의 맛을 더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두 작품은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최근 크랭크인한 영화 '창궐'에서도 특별 출연이 예정돼 있었으나 끝내 출연하지 못하게 됐다.
그가 평소 이상적으로 생각해온 연기는 '모스트 원티드 맨(2014년)'에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그린 군터 바흐만이었다. 김씨는 "최근 할리우드에서 이런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과한 연기는 장르를 불문하고 독이 될 수밖에 없어요. 배우의 연기에도 그렇겠지만, 작품에도 문제가 돼요. 감독은 작품 전체를 보지만, 배우는 한 배역만 끊임없이 파고들어요. 그들보다 배역을 잘 아는 이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김주혁은 자신은 물론 충무로의 새로운 변화까지 꿈꿔온 예술가였다. 대배우인 고 김무생 선생(1943-2005)의 아들로 주목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업지 않고 자신만의 연기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학창 시절에는 수의사가 꿈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로 진로를 바꿔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93년 연극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1998년 SBS 공채 탤런트 8기로 데뷔하면서 배우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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