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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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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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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호세는 바스크 지방의 나바라 출신 용기병(龍騎兵) 하사다. 세비야의 담배 공장에서 위병(衛兵) 근무 중, 집시 여자 카르멘을 보자마자 홀딱 반한다. 공장에서 칼부림을 해 동료를 상하게 한 카르멘을 체포해 호송해야 하는데, 그녀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놓아주고 만다.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진급되기 직전에 졸병으로 강등됐고, 한 달 동안 감옥신세를 진다. 두 사람의 불길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카르멘'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184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조르주 비제가 1875년에 같은 제목의 오페라로 각색했다. 카르멘이 부르는 아리아 '하바네라'는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기억할 만큼 유명하다. "사랑은 들에 사는 새, 아무도 길들일 수 없지… 사랑, 사랑, 사랑은 집시 아이, 제멋대로지. 당신이 싫다 해도 나는 좋아.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때는 조심해요! 당신이 잡았다고 생각한 새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 버릴 테니."
 카르멘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박순만이 번역해 1975년에 초판을 낸 삼중당 문고판 '카르멘'에 이렇게 나온다. "살결은 대단히 매끄러웠으나 구릿빛에 가까웠다. 눈은 사시(斜視)지만 눈꼬리가 유난히도 길었다. 입술은 다소 두툼하나 생김새가 반듯했고, 금방 벗겨 놓은 살구씨보다도 더 흰 이를 보인다. …보헤미아 사람의 눈은 이리의 눈이라는 말이 있는데… 고양이가 참새를 노릴 때의 그런 눈…." 뛰어난 소설독자 김진영은 이렇게 썼다.

 "카르멘은 무엇보다 '순종하지 않는 여자'이다. 이 순종하지 않음이 '자유'라면, 이 자유는 부르주아 여성과 매춘부를 나누는 이분법을 무효화 시키는 카르멘의 특별함이다. 귀부인과 매춘부는 다 같이 '순종 한다'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카르멘은 순종을 통한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중략) 카르멘은 자유에의 열망이 사랑에의 열망보다 앞서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증거 한다."

 카르멘은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이 나를 죽이려는 걸 알아요. 그러나 카르멘은 굴복하지 않아요. 난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죽을 거예요." 그리고 호세의 단검에 찔려 숨을 거둔다. 사랑을 살해하는 장면은 구슬프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커다란 검은 눈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러다가 그 눈은 흐려지더니 감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김진영이 보는 카르멘은 '죽음에 승리하는 여자'다. 카르멘을 통해 삶과 죽음은 자유의 수행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관계로 긍정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죽음에 대한 삶의 승리를, 죽음의 패배를 인증한다." 이러한 안목으로 보면 호세의 칼날에 내맡긴 카르멘의 뜨거운 심장이 곧 자유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나는 메리메가 감탄을 섞어 써내려간 다음의 글귀에서 그녀의 약동하는 삶, 선명한 에너지를 본다.

 "카르멘은 홱 돌아서면서 내 가슴팍을 주먹으로 후려갈겼습니다. 나는 일부러 벌렁 넘어졌습니다. 그 여자는 재빨리 내 몸을 뛰어넘더니 두 다리를 드러내고 달렸습니다. 바스크 여자들의 다리란 말도 있지만, 그 여자의 다리는 그에 못지않게 빠를 뿐 아니라 근사했습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다리' 얘기를 하자.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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