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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해 죽음까지 불사했던 그 여인, '카르멘'이 돌아왔다

최종수정 2016.11.18 11:38 기사입력 2016.11.1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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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아트센터, 20일까지 엘레나 막시모바 주연의 카르멘 공연

성남아트센터의 오페라 '카르멘'

성남아트센터의 오페라 '카르멘'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죽을 거에요(libre elle est nee et libre elle mourra)."

1875년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 모인 관객들은 무대 위 낯선 캐릭터에 당황했다. 분노의 야유를 퍼붓는 관객들도 있었다. 고상하고 귀족적인 취향을 가진 프랑스 관객들은 이 야생의 집시 여인의 이야기에 불쾌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봐왔던 연약하고, 아름다우며, 순종적인 여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치명적인 매력을 이용해 남자들을 거리낌 없이 유혹하고, 죄책감 없이 이용하다 버렸다. 욕망에 솔직하며, 남성편력에, 필요에 따라 거짓말과 욕도 내뱉고, 무엇보다 목숨보다도 자유가 먼저였던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최하층 노동자 계급의 여인. 바로 '카르멘'이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쓴 원작 소설을 보면 '카르멘'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그것은 기이하고 야만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처음 볼 때는 놀라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특히 눈은 사나우면서도 관능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인간의 시선에서도 느낀 적이 없었다. 보헤미안의 눈, 늑대의 눈. 스페인 속담은 좋은 해답을 준다. 늑대의 눈을 보기 위해 식물원에 갈 시간이 없다면, 참새를 노리는 고양이의 눈을 떠올려보라." 조르주 비제는 이 소설을 오페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온 열정을 쏟았다. 열아홉의 나이에 모든 작곡가들이 선망하는 작곡 콩쿠르 '로마 대상(Prix de Rome)'에 당선됐을 정도로 음악성을 인정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렇다 할 오페라 히트작이 없었다. 기대했던 '카르멘'마저 당시 관객들과 평단의 혹평을 받자 비제는 모든 전의를 상실했다. 결국 '카르멘' 초연 후 3개월 만에 비제는 서른 일곱의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타깝게도 비제가 죽고 난 후에서야 관객들은 '카르멘'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다시 프랑스에서도 인기를 얻게 됐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오페라는 모든 면에서 최고이며,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난해는 비제 서거 140주기, 카르멘 초연 140주년의 해였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나 우리는 이제 차이코프스키의 예언이 실현됐다는 것을 안다. '카르멘'은 베르디의 '아이다', 푸치니의 '라보엠'과 함께 오페라의 ABC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작품이 됐다. '투우사의 노래'나 '집시의 노래'는 누구나 전주만 들어도 알 정도가 유명해졌고, 주인공 '카르멘'은 팜므파탈의 아이콘이 됐다.

카르멘을 연기한 엘레나 막시모바.

카르멘을 연기한 엘레나 막시모바.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허름한 담배 공장에서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출신의 군인 돈 호세 앞에 보헤미안 여인 카르멘이 나타난다. 돈 호세는 결혼을 약속한 이가 있음에도 한 순간 카르멘에게 마음이 빼앗긴다. 때마침 담배공장 여공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카르멘은 폭행죄로 체포된다. 호송을 맡은 돈 호세를 유혹해 도주에 성공한 카르멘. 하지만 이내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리고, 결국 사랑에 눈이 먼 돈 호세의 칼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끝끝내 사랑을 애걸하며 위협하는 돈 호세 앞에서도 카르멘은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자유를 지킬 것이라고 맞선다.
위험하고, 거칠고, 관능적인 '나쁜 여자' 카르멘이 되는 것은 모든 오페라 여가수들의 로망이다. 소프라노가 주역이 되는 다른 오페라와 달리 '카르멘'은 메조 소프라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역대 카르멘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역시 '전설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1923~1977)다. 1964년 불혹의 나이에 '카르멘' 전곡 음반을 녹음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죠. 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조심하세요" 그 유명한 유혹의 노래 '하바네라'를 부를 때 마리아 칼라스의 신비로우면서도 독특한 음색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카르멘' 특유의 깊고 어두운 정서를 제대로 표현했다. 하지만 마리아 칼라스는 실제로 카르멘 오페라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다. 카르멘의 강렬한 매력과 카리스마를 직접 연기하기에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카르멘은 남자의 내면을 지닌 강한 여자다. 하지만 나는 여성적인 성격이다"라고 했다.

그리스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73)는 맨발의 카르멘으로 유명하다. 장미꽃 한 송이로 돈 호세를 유혹할 때 아그네스 발차의 눈빛은 농염하게 이글거린다. 특히 198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펼쳐 보인 호세 카레라스(71)와의 무대가 두고두고 회자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카르멘의 자유분방하고 저돌적인 매력을 집시의 옷차림에서부터 표정, 몸짓으로 극대화했다. 흑인 최초의 소프라노 레온타인 프라이스(90)가 1963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로 녹음한 '카르멘'은 드라마틱하면서도 차갑다. 루마니아 출신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52)는 돈 호세의 약혼자 '미카엘라' 역을 맡아오다 2003년 '카르멘' 전곡 음반을 녹음했다. 타고난 미모와 미성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게오르규지만 관능의 '카르멘' 보다는 역시 착하고 순한 '미카엘라'가 더 어울린다는 평도 있다.

17일부터 20일까지 성남아트센터 무대에는 '차세대 카르멘' 엘레나 막시모바(38)가 오른다.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졸업하고 2005년 주빈 메타(80)가 지휘하는 독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막달레나' 역으로 유럽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베를린 슈타츠오퍼, 드레스덴 젬퍼오퍼 무대에 이어 2010년에는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에서 '카르멘'을 맡아 '카르멘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짙은 흑발 대신 금발 머리를 휘날리는 색다른 카르멘을 만나볼 수 있다. '마탄의 사수', '나비부인' 등 약 200여편의 오페라를 연출한 전 국립창극단 상임연출가 정갑균(54)이 처음으로 '카르멘' 연출에 도전했다.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다양한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역량을 발휘해 온 성시연(40) 지휘자 역시 이번 무대로 국내 오페라 데뷔 무대를 갖는다. 성남문화재단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2015년 '라 트라비아타'에 이어 두번째로 자체 제작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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