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를 스무번 이나 쓰고도 관직에서 물러날 수 없었던 황희 정승은 왕이 죽기 넉달 전에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의 나이 아흔살 때였다. 사진 = Wikipidia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신의 나이가 90에 가까운데 공이 없이 녹을 먹으오니 청하옵건대 신의 직책을 파하여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하소서”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40세 안팎으로 전해지는데, 90세를 넘긴 한 늙은 신하가 왕께 나아가 간절히 읍소했다. “제발 자신을 사직시켜 달라”고. 회사 ‘정규직’ 취업과 ‘정년’ 채우기가 판타지가 돼버린 요즘의 시선으론 행복에 겨운 사직서로 읽히지만, 노신(老臣)의 심정은 정말이지 절박했다.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이라는 뜻의 사축(社畜)은 자유의지와 인생을 송두리째 회사에 좌지우지 당해 가축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 현실을 자조하는 직장인의 자기비하적 표현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야근’을 살충제 성분 DDT와 같은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직장문화, 관습을 이유로 야근 ‘당하는’ 직장인 개개인의 보람은 당연히 일이 아닌 돈을 향할 수밖에 없는 현실. 혹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도 어김없이 야근 중이라면, 끊임없이 사직서로 항거했던 황희 정승의 용기를 빌려 외쳐보시라.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고.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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