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더 바빠요]"편안한 연휴, 누군가의 희생 덕분"
[인터뷰] 추석에도 쉬지 못하는 지하철 기관사, 의료인, 119구급대원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금보령 기자, 이승진 기자]사상 최대 10일 연휴를 맞아 대부분의 시민들이 고향이나 여행지를 찾아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있다. 이같은 편안한 일상을 즐기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쓰고 있는 누군가의 노고가 필수적이다. 지하철 기관사, 의료인, 119구급대원 등 추석이 오히려 더 바쁜 사람들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 제비뽑기도 포기한 지하철 기관사 이종원씨.
"연휴에도 안전운행, 정시운행 등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추석 당일인 4일에도 어김없이 2호선 기관차를 운행하는 서울교통공사 소속 이종원(45) 기관사의 다짐이다.
23년차인 이 기관사는 직업 특성상 연휴나 명절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정부에서 임시공휴일을 지정해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며 승객들을 위해 나와서 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관사가 일하는 동대문 승무사업소 경우 연휴 때마다 신청을 받아 제비뽑기 등 추첨을 통해 휴가를 정한다. 지난해 추석 때 휴가에 당첨됐던 이 기관사는 올해 추첨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에 쉬었는데 올해 또 신청해서 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쉴 수 없으니 올해는 근무하는 걸로 결정했다"고 얘기했다.
이제는 가족들도 연휴에 일하는 이 기관사를 잘 이해해준다. 그는 "20년 넘게 일하다보니 가족들도 이해하고 있다"며 "그런 가족들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관사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승객들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건넬 때다. 간혹 수고한다며 음료수를 주는 승객들도 있다. 이 기관사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승객들이 칭찬해주면 기분이 좋다"며 "'수고한다'는 말 한 마디에 피로가 날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요즘은 승강장마다 안전문이 있어 승객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다.
◇ '연휴'가 낯선 119구급대원 정미라씨.
"연휴라는 게 따로 없어요.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서울 중화119안전센터 소속 정미라(30) 구급대원의 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근무하지만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얘기다. .
구급대원의 삶에는 연휴라는 단어가 낯설다. 근무형태 자체가 오래 쉴 수 없는 구조인 탓도 있다. 정 대원은 3주를 기준으로 첫 주에는 주간 근무를 하고, 나머지 2주 동안은 야간근무와 비번을 하루씩 반복한다. 주말엔 24시간 당번도 서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설날이나 추석처럼 3~4일 쉬는 연휴도 평일과 다를 바 없다.
정 대원은 지난해 추석 때 한 생명을 살린 경험이 있다. 50대 여성이 추석 연휴에 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심정지가 온 상황이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서 살펴봤더니 호흡, 맥박 모두 없었다. 그러나 기도를 확인해 떡을 겸자로 빼고, 산소를 투여한 뒤 심폐소생술을 했더니 환자의 숨이 돌아왔다. 그는 "초를 다투는 일에는 연휴와 평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 대원은 이번 추석 연휴에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망우리 시립묘지에 근무를 하러 나간다. 시립묘지 등 명절에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는 사고가 발생하거나 혹시 모를 응급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시립묘지에는 풀이 많다보니 뱀에 물리는 경우나 벌에 쏘이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그나마 가족과 친구들은 연휴에도 쉬지 못하는 그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편이다. 정 대원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이해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며 "연휴니까 가족들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지만 소방공무원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 부모님도 이를 아시니까 혹여나 제가 미안해 할까봐 서운한 말씀은 안 하신다"고 말했다.
◇'사명감' 충만, 24시간 환자 돌보는 의료인들
"명절에 언제 고향을 찾았는지 기억조차 안나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병동에서 근무하는 강유경(38) 간호사는 이번 추석도 환자들과 함께한다. 올해 17년차 베테랑 간호사인 강 간호사는 명절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환자, 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는 "3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간호사들에게 명절은 큰 의미가 없다"며 "우리가 아니면 환자는 누가 돌보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번 추석 연휴 열흘 동안에도 전국 535개 병원 응급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24시간 진료한다. 많은 민간 의료기관이 문을 닫는 추석 당일마저도 보건소 등 336개 공공의료기관은 진료를 쉬지 않는다.
간호사 근무 초기 가족을 못 만난다는 것에 큰 상실감을 느꼈다. 이젠 명절이면 가족보단 환자들을 먼저 떠올린다. 강 간호사는 "명절이 다가오면 '병동의 환자는 누가 돌보지'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소화기내과 김도훈(46) 교수 역시 당직근무로 인해 병동에서 추석을 보낼 예정이다. 김 교수는 "명절이 되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 똑같다"며 "하지만 환자 곁을 지켜야하는 것이 의료인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추석이면 과거 시골 마을에서 공중보건의사 시절이 떠오른다. 추석 당직을 서던 어느 날 할머니 몇 분이 손에 까만 봉투 하나씩 들고 나타났다. 한 분은 나물 반찬을 싸오셨고, 한 분은 하얀 속옷과 양말을 선물했다. 김 교수는 "속옷을 받아 집에서 펼쳐보니 제 사이즈보다 너무 작아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며 "이런 기억들 하나하나가 모여 명절에 일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회상했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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