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로 재조명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1980년그의 취재과정 고스란히 담아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도 알 수 있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것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개봉 이후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고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그의 뜨거운 취재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항쟁은 20일 절정에 달했다. 그는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가끔씩 촬영을 멈췄다. 베트남전쟁을 종군취재했지만 이토록 비참한 광경은 처음 보았다. 그는 21일 오후 목숨을 걸고 가까스로 광주를 빠져나갔다. 서울에 도착한 뒤 촬영한 필름을 쿠키상자에 옮겨 독일 함부르크로 보냈다. 검문을 뚫고 가는 데만 22시간이 걸렸다. 그는 필름만 넘기고, 곧장 광주로 돌아갔다. 촬영된 영상은 22일 마침내 독일 전역에 방송됐다. 이는 광주에서 벌어진 참극을 전 세계에 알린 최초의 영상이다.
그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2011년 5월 25일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관련 기록물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활동과 이후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문건, 사진, 영상 등의 자료를 총칭한다.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한 이유는 5·18민주화운동이 한국의 민주화에 큰 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루는 데 적잖은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건임에 분명했다.
힌츠페터가 보여준 명백한 증거영상은 깊은 충격을 준다. 특히 우리 언론에 경종을 울린다. 당시 전두환의 신군부는 광주 상황을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몰거나 '폭도들이 점령한 도시'로 적시하는 등 왜곡해 보도하거나 또는 침묵했다. 상황이 이랬으니 계엄군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온 외국인 기자를 그 누가 뜨겁게 환영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주로 온라인을 통해 터무니없이 왜곡된 정보가 유통된다. 지난 1997년 '5·18 특파원 리포트' 출판기념회 및 외신언론인 초청토론회에서 힌츠페터는 이렇게 말했다.
"17년 만에 광주에 다시 왔는데 여전히 시위진압 경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나는 광주를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알렸지만 이렇게 책을 만드는 작업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18은 세계 민주투쟁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 천안문 사태보다 작은 사건이 아니다."
1997년 5월17일 5.18국립묘지 주차장에서 외신기자들에게 5.18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이재의 씨(오른쪽에서 두번째). 독일 ARD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왼쪽에서 두번째)는 주의 깊게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창비 블로그]
원본보기 아이콘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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