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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사람]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정사'는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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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장 팔린 '사의 찬미'와 이탈리아 생존설의 진실

윤심덕(왼쪽)과 김우진

윤심덕(왼쪽)과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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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8월5일, 충격적인 소식 하나가 당시 일본의 지배를 받던 조선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유명 성악가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전날 동반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한 신문은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情死)'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했다. 정사(情死)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해 함께 자살하는 것을 뜻한다.

기사는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이 4일 오전 쓰시마섬(대마도)을 지날 때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즉시 배를 멈추고 수색을 했는데 종적을 찾을 수 없었고 승객명부를 보니 남자는 김수산, 여자는 윤수선이라고 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본명이 아니고 남자는 김우진이었으며 여자는 윤심덕이라고 기사는 전했다. 윤심덕의 지갑에는 현금 140원이 있었고 김우진은 현금 20원과 금시계를 남겼다. 관부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현해탄 정사'의 전말 = 1897년생으로 동갑이었던 두 사람은 그렇게 91년 전 오늘인 1926년 8월4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나머지 함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정리됐다. 우리나라 최초 소프라노가 전라도 거부의 아들로 근대 교육을 받은 극작가였지만 처자식이 있던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스물아홉 살에 함께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두고두고 여러 얘기를 낳았다.

그해 윤심덕이 일본에 간 것은 음반 녹음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계획된 녹음을 다 마친 후 윤심덕은 특별히 한 곡을 더 녹음하고 싶다고 했다. 요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번안한 것으로 가사는 윤심덕이 직접 쓴 것이었다. 바로 '사의 찬미'다. 앞서 윤심덕은 김우진에게 일본으로 오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고 두 사람은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함께 올랐다. 비극적인 연인 윤심덕과 김우진의 유언이라고 해석된 '사의 찬미'는 10만 장이 팔렸다.

◆이탈리아 생존설의 진실 = 하지만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의구심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죽었다고 꾸미고 이탈리아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사의 찬미' 음반과 이를 듣기 위한 축음기 판매를 위해 죽음을 조작했다는 음모론도 끊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생존설'은 평소 윤심덕이 이탈리아 유학을 꿈꿨다는 데서 출발한다. 조선총독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은 최초의 유학생이자 도쿄음악학교 최초의 조선인 유학생이었던 윤심덕은 가족들에게 이탈리아에 가서 음악을 더 배워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도 가족들은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던 윤심덕이 그런 선택을 했을 리 없다며 잘못 전해진 것으로 여겼다.

윤심덕과 김우진이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는 얘기는 6년이 지난 1931년 퍼졌다. 김우진의 형 김철진이 총독부에 자신의 동생을 찾아달라고 수사 의뢰를 한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윤심덕과 김우진이 'KYDO'라는 간판을 달고 잡화상을 한다는 소문이 있으니 대사관을 통해 이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답은 한 달 남짓 지나서 왔다. 로마의 일본대사관에서 찾아봤으나 그런 남녀는 없으며, 앞으로 발견되면 통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로마에서 잡화점을 한다는 것은 헛소문인 것이 확인된 셈이었다.

◆로마에서 악기점을 한다고? = 흥미로운 것은 3년 뒤인 1934년 이 두 사람이 로마에서 악기점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또 퍼진 것이다. 이 소문은 자살 미수로 잡혀온 18세 소년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김옥균의 친손자인 김원세라고 했다. 어눌한 한국말로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의 고향을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심덕과 김우진이 로마에서 악기점을 하고 있다는 진술도 했다. 이에 경찰들이 이탈리아에 신원조회를 하자 이 소년은 자취를 감췄다.

이 소년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며칠 뒤 드러났다. 이영태라는 소년이 자살극을 벌이다 잡혀왔는데 상하이 출신으로 마적들에게 가족을 잃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소년이 김원세와 동일인이었던 것이다. 이 소년은 강원도 암자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는데 그 생활이 지겨워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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