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의 라이브 리뷰]로테르담 필, 4년 만의 내한공연
지휘자 다비트 아프캄과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유럽축구에서 네덜란드리그 에레디비시 상위팀은 무역상 역할을 해 왔다. 아약스 암스테르담, PSV 에인트호번, 로테르담의 페예노르트가 배출한 데니스 베르흐캄프, 박지성, 디르크 카윗 같은 원석은 영국으로 건너가 아스널, 맨유, 리버풀에서 축구 인생의 절정을 맞았다.
네덜란드 제2의 도시를 대표하는 악단,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장기 집권한 지휘자들도 오케스트라를 런던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1995년부터 13년간 사령탑에 오른 '마린스키의 차르'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2007년 런던 심포니 수석 지휘자로 부임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악단을 감독 중인 야닉 네제 세갱도 2010년부터 4년간 런던 필하모닉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축구처럼 클래식에서도 로테르담은 미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곳이다.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와 함께 네덜란드 관현악의 자존심을 지켜온 로테르담 필하모닉이 오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4년 만에 네 번째 내한공연을 한다. 이번 내한은 현 감독 세갱을 대신해, 스페인 국립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 다비트 아프캄이 지휘봉을 잡는다. 격식보다 내실에 치중한 악단의 컬러가 여실하다.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이 애피타이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 메인 요리다.
로테르담 필의 본거지인 공연장 될른을 찾으면 악단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성원을 체감할 수 있다. 2차 대전 나치 독일의 공습으로 도시 기반이 무너진 이후 로테르담 시민들은 악단의 성장을 도시의 재건과 동일시했다. 로테르담 필도 올해 18년 만에 에레디비시 정상에 오른 페예노르트를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으로 축하하고, 정규 시즌에도 단원들이 페예노르트 유니폼을 입고 깜짝 연주를 펼친다. 축구와 클래식이 도시 문화를 살찌우는 대표적인 사례다.
로테르담 필의 가장 큰 특징은 다국적이다. 한국인 첼로 수석 임희영을 비롯해 세계 20여개국 단원들이 성원을 채운다. 유럽의 관문인 무역항 로테르담 항구의 지리적 특성처럼 로테르담 필 역시 국적을 불문하고 실력 있는 음악가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악단 역량을 강화했다. 다만 지난 3월 총선에서 반 이민을 내세운 극우 정파, 자유당이 로테르담에서 최다 득표를 얻으면서 다문화에 관용적였던 기존의 도시 문화가 후퇴하리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로테르담 필의 의사 결정은 엄청나게 빠르다. 세갱이 2016년 6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의 차기 감독으로 내정되자 로테르담 필은 바로 후임 감독 인선에 들어갔다. 그리고 불과 2개월 만에 1989년생 텔 아비브 출신의 무명 지휘자 라하프 샤니를 새로운 감독에 선임했다. 샤니는 2013년 말러 지휘 콩쿠르 우승 이외엔 경력이 일천한 신인이었다. 그러나 악단 경영진과 단원들은 지난해 6월 한 차례 객원 지휘에서 샤니와 함께한 순간의 느낌을 믿었고, 5년간 감독직을 맡겼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결정이다.
주목할 부분은 로테르담의 선택이 이뤄진 후 샤니의 인지도와 몸값이 덩달아 올라간 점이다. 빈 심포니 수석 객원지휘자에 임명됐고 독일의 특급 악단인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정기 연주회에 서면서 단숨에 차세대 주자로 부상했다. 클래식계에서 로테르담이 어떤 곳인지를 입증하는 장면이자 악단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전형적 사례다.
1983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신의 아프캄은 로빈 티치아티(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피에타리 잉키넨(도이치 라디오 필하모닉), 야콥 흐루샤(밤베르크 심포니)와 함께 독일 관현악계를 책임지는 1980년대생 지휘자군의 선두다. 네덜란드의 명장,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의 조수로 활동했고 무곡에 맞춰 춤을 추듯이 긴 팔로 그림을 그리는 지휘 포즈가 인상적이다. 2015년 로테르담 데뷔에 1500여 관객이 모일 만큼 흥행성이 출중하다. 5월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에 올린 히나스테라 오페라 '보마르초'의 현지 반응이 뜨거운데, 독일 지휘자가 스페인에서 인기를 얻은 건 양쪽 혈통을 물려받은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 이후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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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의 성패는 사실상 1989년생 대만계 호주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이 쥐고 있다.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연주할 첸은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우승하면서 국제 무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시즌이 바뀔 때마다 놀라운 잠재력을 세계 곳곳에서 터뜨리고 있다. 2015~2016년에도 리사이틀과 내한 협연을 통해 소문의 실체를 국내 음악계가 확인했다. 바로크부터 근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하이페츠, 메뉴힌 같은 과거의 명인들이나 풍기던 거장적 기교를 공연장에서 마음껏 부린다. 유쾌한 성격과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자연스레 인재를 모이게 한다. 막심 벤게로프 이후 실력과 상업적 능력을 겸비한 최고의 바이올린 유망주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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