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뉴스 캡쳐

뉴스 캡쳐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노해섭 기자]1950년 6.25전쟁 당시 수세에 몰렸던 우리 국군에 북한군 작전지도를 들고 귀순한 20살 김유각 상병.


70여년이 흐른 지금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16일 <MBN>뉴스에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6.25발발 두달만인 1950년 8월 21일 국군은 낙동강 인근까지 밀려났지만, 북한군 작전계획을 들고 북한군 병사 2명이 귀순해 다부동 전투에서 전세를 뒤엎는데 공을 세웠다.


그 화제의 주인공은 김유각(88)옹.

전남 장성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근황이 이날 방송되면서 홍안의 젊은 목숨을 담보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고서 '국가유공자' 지위와 명예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6.25 전쟁 67주년을 앞두고 그간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수세에 몰렸던 국군에 낙동강 방어선은 최후의 보루였다. 한없이 뒤로 밀리던 국군과 연합군은 당시 20살 김유각 북한군인의 작전지도 첩보에 힘입어 전세를 뒤엎는 데 성공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는 김유각 옹은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4km(약10리)의 거리를 밤새도록 포복을 통해 귀순해 정보를 제공했다"며 "이후 우리 국군은 융단 폭격을 통해 그 다음 날부터 '정의의 진격'으로 북진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김 옹은 한국군에 재입대해 상사까지 지냈지만, 북한의 보복이 두려워 늘 숨어지내야 했다.1997년 장성 외진 산골마을에 터를 잡고 컨테이너를 활용한 집과 변변찮은 살림으로 은둔 생활이 계속 이어지면서 험난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같은 김 옹의 안타까운 소식에 뒤늦게 주변의 도움으로 공적확인서 등이 국방부에 제출돼 국가유공자에 대한 5월 심사를 앞두고 있다.


88살 노병의 소원은 명예 회복보다 하루빨리 통일이 돼 가족의 유해라도 찾는 것.


김유각 옹 "가슴이 미어지죠. 나 때문에 가족 모두 총살도 아니고 묶어서 기름 붓고 태워 죽였는데 얼마나 고통받으며 돌아가셨겠느냐"며 "죽어서라도 사죄해야 한다"며 설움에 복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AD

한국전쟁에 참여해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자랑스런 군인들 해마다 수많은 참전 군인들이 세상을 뜨면서 고귀한 피를 흘린 고령의 참전군인들에게 명예를 회복하고 자긍심을 드높여 주는 국가의 대우가 절실한 실정이다.


한편, 낙동강 다부동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전투는 6.25전쟁 첫해인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3일까지 55일간 치열하게 벌어진 전투로, 한미연합군 1만여명과 북한군 2만3000여명이 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해섭 기자 nogar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