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한국 정치의 고질병으로 꼽혔던 지역갈등 구조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지역감정보다는 세대, 이념 성향 등이 한국 정치의 주요 균열 구조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 3일 공개한 주간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등 정치 상황 변화가 일차적으로 작동한 결과지만, 민주당이 전국 지지율은 물론 지역별 지지율에서조차 1위를 차지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변화다. 특히나 이번 여론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지역 구도의 뿌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부산ㆍ울산ㆍ경남(38%)은 물론 대구ㆍ경북(30%)에서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1위라는 점이다. 과거 이 지역 맹주를 자처했던 새누리당은 부산ㆍ울산ㆍ경남에서 12%, 대구ㆍ경북에서는 26%를 차지했다.

지역 구도는 그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힘이었다.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각각 부산ㆍ경남, 호남, 충청의 대표 정치인으로 자리 잡으면서 지역별로 정당이 할거하는 체제가 구축됐다. 이런 3김 정치의 영향으로 호남은 민주당 계열 정당, 영남은 새누리당 계열 정당이 압도적 강세를 이어갔다.


이 같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여러 정치인이 몸을 던졌지만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를 버리고 새천년민주당(민주당 전신) 깃발을 달고 부산 강서을에 도전했을 당시만 해도 이런 도전은 '무모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 전국적인 유명세를 갖췄던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16대 총선에서는 35.7%를 얻는 데 그쳐 허태열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후보(53.2%)에게 패배했다. 경남 김해 출신으로,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지역주의의 파고는 넘어서기 어려웠다. 노 전 대통령 외에도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수도권 대신 야권 불모지 대구지역에 도전장을 던져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6회 지방선거에서 각각 패배의 아픔을 겪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연고 지역이었던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은 29.9%, 경남에서 27.1%를 얻는 데 그쳤다. 열세지역이었던 대구서는 18.7%, 경북에서는 21.7%를 얻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광주에서 95.2% 전남 93.4% 전북 91.6%라는 몰표를 얻었다. 경쟁자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대구에서 77.8%, 부산에서 66.7%, 경북에서 73.5%, 경남에서 67.5% 등 영남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물론 이 후보는 광주에서 3.6%, 전남에서 4.6%, 전북에서 6.2%의 극히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지역주의의 벽이 과거보다 완화되는 흐름이 감지됐다. 새누리당 소속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에서 48.2%를 그치는데 반해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 소속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39.9%를 기록했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득표율이 올라간 것이다. 경남에서도 문 전 대표는 36.3%를 기록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기록한 63.1%에 비해 득표율에서 크게 뒤지는 수준이지만 16대 대선 당시보다 표 차이가 줄어들었다. 호남에서도 표 차이는 줄었다. 박 대통령은 광주에서 7.8%, 전남에서 10%, 전북에서 13.2%를 얻었다. 호남은 문 전 대표에게 몰표(광주 92%, 전남 89.3%, 전북 86.3%)를 몰아줬지만, 과거 대선보다 결집도는 약화했다


이런 지역 구도에서도 유일한 예외 지역은 바로 대구ㆍ경북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구에서 80.1%, 경북에서 80.8%를 얻었다. 16대 대선 당시보다 대구ㆍ경북 지역의 결집도는 오히려 올라갔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이 같은 구도 자체가 사라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6일 발표한 주간 여론조사를 보면 문 전 대표의 경우 대구ㆍ경북지역에서 30.8%를 얻어 지역 내 1위를 차지했다. 지역 내에서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 불출마 이후 반사이익을 얻은 점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지지율뿐만 아니라 지난해 총선에서도 지역 구도는 약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그동안 대구에서 고배를 마셔왔던 김부겸 의원이 야권의 불모지였던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에 선출되는 등 야권은 영남지역에서 8석의 의석을 얻었다. 반대로 새누리당 역시 창당 이후 처음으로 호남에서 2석을 얻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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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정당과의 연결구도도 약화했다. 가령 민주당의 경우 약체 후보로 꼽히는 최성 고양 시장(광주)을 제외하면 호남 연고 후보는 없다. 문 전 대표는 경남 거제, 안희정 충남지사는 충남 논산, 이재명 성남시장은 경북 안동,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경북 상주 출신이다. 국민의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의 경우도 고향은 부산이다. 호남을 두고 격돌하는 양대 정당인데도 불구하고 지역 출신 대선 후보는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19대 대선은 지역구도 보다는 세대나 이념 성향 등이 표심을 가르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때문에 종래의 지역구도를 깬 형태의 대선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형성되고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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