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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도올 따라 걷는 '뿌리찾기' 여행

최종수정 2016.12.19 18:50 기사입력 2016.12.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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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
9일간 주몽왕 도읍지 흘승골성 등 방문…도올 설명에만 의존, 설득력은 떨어져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 스틸 컷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 스틸 컷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렇게 꼭 매는 건 처음이네." 산 중턱에서 운동화 끈을 잘끈잘끈 조인다. 거친 숨도 고른다. 돌부리와 나뭇가지를 헤치고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른다. 중국 대련시 금주구 시가지에서 동북쪽으로 20㎞ 떨어진 대흑산. 해발 663m의 산정에 비사성(卑奢城)이 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침입하자 고구려가 죽음 힘을 다해 싸운 곳. 도올 김용옥(68)은 등반부터 버겁다. "보통 지형이 아니네. 허리를 못 쓰니까 몇 배 힘이 들 수밖에 없어. 에이, 늙었다. 늙었어." 간신히 다다른 정상에서 불평은 눈 녹은 듯 사라진다. 동북쪽 정상을 축으로 서쪽과 남쪽 산능선상으로 뻗은 석회암 성벽. 약 5㎞ 길이의 산성을 올려보며 연신 감탄한다. "역사 기록의 진실성은 이런 땅을 밟으면서 검증해야 해요. 앞으로 사가(史家)들은 땅을 밟고 역사를 써라."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의 목적은 뚜렷하다. 과거의 흔적을 밟으며 현재를 관통하는 '살아있는 역사'를 찾는다. 뼈대는 도올이 중국 연변대학에서 객좌교수로 강의하며 겪은 경험을 일기 형태로 기술한 '도올의 중국 일기.' 광활한 대륙에서 광범위한 역사인식과 깊이 있는 관점으로 우리 역사의 실상을 보고한다. 도올은 아흐레에 걸쳐 주몽왕의 도읍지 흘승골성(訖升骨城),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등을 방문한다. 영하 20도의 만주벌판도 달려간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도 그는 힘주어 말한다. "고구려부터 발해를 거쳐 최근 독립군 투쟁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역사를 이 눈길을 걸으며 한 번에 느낀다. 우리는 이 동북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도올은 2005년에도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EBS에서 10부작으로 제작한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다. 출연은 물론 편집, 구성, 내레이션, 주제곡 작사까지 도맡았다. "방송국에서 유명작가를 붙여주겠다고 했는데, 내게 뭔 작가가 필요해. 편집도 한 장면을 7초 이상 계속 보여주면 지겹다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 4분 넘어도 필요하면 그냥 보여주는 거지." 이른바 '도올식 제작'은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시청자의 요청이 쇄도해 EBS는 물론 지역 공중파에서 재방송됐다. 특유 직설적 화법과 서적ㆍ논문 1000여권을 기반으로 한 꼼꼼한 준비, 테이프 400개 분량의 취재 기록 등이 낳은 성과였다.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 스틸 컷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 스틸 컷


나의 살던 고향은의 제작 방식은 11년 전 그대로다. 그런데 설득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95분으로 제한된 틀. 열변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도 박진숙 화백의 '고구려 패러다임 지도'와 직접 찾은 유적지 정도다. 도올의 설명에 전적으로 의존해 애절한 호소가 마음에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더구나 이번 주제는 일제강점기보다 훨씬 오래 전인 고구려와 발해다. 애니메이션 등 새로운 서술의 도움 없이 당시 생활상이나 전쟁 등을 떠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교과서로 습득한 고구려와 발해인들의 진취적인 기상을 단순히 확인하는데 그치고 만다.

오히려 영화에서 부각되는 요소는 도올 자신이다. 뒤늦게 고구려의 숨결을 체감한다며 한탄하고, 거대한 규모에 놀라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신 등에서 노학자의 이면이 드러난다. 영화를 이끄는 큰 동력으로 작용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기행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압권은 장천1호분 등으로 이동하며 마주하는 압록강변. 그 건너의 북한을 가리키며 울분을 토한다. "이 곳에 올라와 보니까 너무도 감개무량한데, 저쪽은 못가는 산하고 이쪽은 우리가 갈 수 있는 산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 이것이 정치현실이고,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다. 우리 삶을 회복하는 의미에서 하루빨리 자유롭게 왕래하고 열강이 깔보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한다." 도올은 스태프와 함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다섯 번 절을 한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외친다. "통일이여, 오라."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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