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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무당이 나라 살렸다? 살라미스 해전

최종수정 2016.12.21 14:30 기사입력 2016.11.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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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가 신탁을 전하던 델포이에 위치한 아폴론 신전 터(사진= 두산백과)

무녀가 신탁을 전하던 델포이에 위치한 아폴론 신전 터(사진= 두산백과)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최순실사건 이후 라스푸틴, 진령군, 신돈 등 나라를 망쳤다고 알려진 무당, 요승들에 대한 옛 이야기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최씨의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구국선교단에서 함께 활동한 사이비 교주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옛 무당들의 전횡과 최순실사건을 비교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당이 항상 나라를 망쳤던 것만은 아니다. 고대사회에서 무당, 즉 신관은 최고의 엘리트 계층들이었으며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라를 구한 일도 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살라미스 해전에서 델포이 무녀가 전달한 '신탁'은 승리의 귀중한 발판이 됐다.
기원전 480년 9월,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1세는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쳐들어왔다. 이를 흔히 제3차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부르며 영화 '300'의 배경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당시 페르시아군을 100만명으로 기록하고 있고 200만명, 300만명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다. 실제 병력은 16~20만명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20만이라고 잡아도 당시 그리스 폴리스 내 병력을 다 합친 것보다도 몇 곱절 많았다.

구름떼같이 몰려온 페르시아군은 인해전술로 전선을 밀고 내려가며 거의 모든 그리스의 도시들을 집어삼켰다. 스파르타는 물론 아테네까지 잿더미로 변했다. 영화 300으로 유명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 병사들의 희생으로 그리스 연합군은 그나마 전열은 가다듬을 수 있었지만 시민들은 우왕좌왕했고 지도부도 제대로 전략을 세우기 힘들었다.

아테네의 사령관인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섬에서 연합함대를 집결시켜 페르시아군을 몰아내야한다 주장했으나 대다수 시민들은 후방인 코린토스 해협으로 물러나 거기서 다시 연합함대를 집결해 싸워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단 함대가 뒤로 물러나면 얼마나 많은 숫자의 함대가 흩어질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스 도기에 그려진 델포이 무녀의 모습(사진=독일 알테스 박물관)

그리스 도기에 그려진 델포이 무녀의 모습(사진=독일 알테스 박물관)


이때 테미스토클레스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건 델포이 무녀의 신탁 덕분이었다. 델포이 무녀 아리스토니케는 전쟁 전 아폴론 신의 신탁을 통해 페르시아와 육전에서 맞서지 말고 살라미스 섬에서 해전을 벌일 것을 조언했다. 아리스토니케의 신탁은 다음과 같았다.

"멀리 보시는 제우스께서는 그대에게 나무 성벽(teichos xylinon)을 주실 것인즉, 이 나무 성벽만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와 그대들의 자식들을 도와주게 되리라. 그대는 대륙에서 기병과 보병의 대군이 다가오기를 가만히 기다리지 말고 등을 돌려 도망쳐라. 언젠가는 적군과 맞설 날이 다가오리라. 신성한 살라미스 섬이여. 데메테르가 씨를 뿌리거나 수확할 때, 너는 여인들의 자식들을 죽이게 되리라".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신탁을 십분 활용한다. 신탁에 나온 나무성벽은 함대를 뜻하며 신탁 내용대로 살라미스 섬에서 반드시 싸워야한다 주장한 것. 그 덕분에 전략이 통일됐고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승리도 가능했다.

델포이 무녀가 이런 구체적인 전략을 신탁으로 내려줄 수 있었던 것은 고대사회에서 무당, 신관들이 각종 고대 문서와 기밀사항 등을 독점적으로 처리하며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엘리트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예언의 신인 아폴론을 모시는 델포이 무녀는 피티아(Pythia)라고 불렸으며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선발했는지는 모르지만 델포이에 사는 귀족여인들 중 한명을 특별히 선발해 교육을 시킨 후 아폴론 신을 모시는 무녀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적인 판단에 종교적인 믿음을 더했기 때문에 당대 그리스인들에게도 그녀의 예언은 권위가 있었던 것이다. 최순실사건과 비교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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