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초동여담] 그분의 말씀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그 분의 말씀은 곧 법이다. 생활의 지침이자 행동의 규율이요 인생의 가이드라인이다. 언제나 옳고 한 치도 그른 법이 없으니 금과옥조(金科玉條)임에 틀림없다.

돌려 말할 것도 없이 청와대에 계신 그 분 얘기는 아니다. 집에 있는 마눌님 얘기다. 스카이프를 쓸 일이 있어서 '마눌님'으로 연락처를 검색했더니 엉뚱하게 다른 마눌님들이 수두룩 나오는 걸로 봐서 나만 그렇게 칭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청와대의 그 분이야 "혼이 비정상"인 국민들의 정신 건강까지 챙겨주시고 특유의 유체이탈식 화법 때문에 번역기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얘기하는 그 분은 한번 들으면 귀에 쏙쏙 박히는 직접화법 그대로니 학습효과는 배가 된다.
왜 하필 '그 분'이라 칭하느냐고 따지면 할 말은 없지만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그렇게 표현하기로 하자.

어찌됐건 언제나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니 그 분의 말씀은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한다. 특히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몇몇 말들은 어록으로 삼을 만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저녁 자리를 나름 일찍 파하고 귀가했더니 새근새근 자는 아이 얼굴을 보고 있던 아내가 내게로 슬며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아이가 깰까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우리 ○○이는 이렇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데, 당신은 왜 안 보고 있어도 보기 싫을까." '@.@'
또 언젠가는 저녁 뉴스에 노후준비를 위한 재테크와 관련된 정보성 기사가 나오길래 무심코 '우리도 저런 거 준비해야 하려나' 하고 한 마디 내뱉었더니 설겆이를 하느라 들리지도 않았을텐데 아내는 잠시 틈도 주지 않고 이렇게 되받는다.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노후준비는 나한테 잘하는 거야." '끙. 소머즈?'

무방비 상태로 연속해서 의문의 패배를 당했지만 미루어 짐작컨데 여느 집 남편들이 대부분 '남의 편'인 그런 사정이리라.

내가 아내의 말을 그 분의 말씀으로 되새기는 데는 저간의 사정이 있다. 젖먹이를 떼어놓고 회사에 다시 나갔던 아내가 식탁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유아휴직 제도야 있었지만 출산휴가 3개월을 쓰는 것도 눈치보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회사에서 유착기로 아이 식량을 준비해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퇴근길에 가져오는 방법으로 6개월 넘게 아이에게 모유를 먹였다. 그런데 그나마 이제 안나온다는 것이 눈물의 이유였다. '모유가 없으면 분유 먹이면 되지, 왜 그러느냐'는 내 말은 끔찍한 모성에게는 '남의 편' 얘기에 불과했으리라. 좀체 눈물이 없는 강단 있던 사람이라 깜짝 놀랐었는데 그날 이후 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은 그렇지만 모처럼 요리를 한답시고 여기저기 음식물을 흘리고 설겆이라도 할라치면 행주는 빠트리기 일쑤이니 그 분의 성에 찰 리 만무하다. 마눌님을 둔 세상의 모든 남의 편들도 사정은 비슷할 터. "집안 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라는 말을 귀에 박힐 정도로 듣지 않던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남의 편들이여, 최소한 명절 뒤끝에라도 페미니스트가 되자.

憑堂(빙당ㆍ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 세종대왕동상 봄맞이 세척

    #포토PICK

  •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부르마 몰던 차, 전기모델 국내 들어온다…르노 신차라인 살펴보니 [포토] 3세대 신형 파나메라 국내 공식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