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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눈]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30억 스포츠카 부가티 타는 '리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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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서 타인과 자기를 속인 '화려한 이미지의 사기극', 그 일그러진 경제학의 내면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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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리플리의 삶은 가짜였다. 바다 한가운데 요트에서 자신을 늘 무시하던 부자 친구 필립 그린리프를 죽인 다음부터 그 가짜 삶이 시작됐다. 그는 필립 행세를 하며 그의 돈을 인출해 쓰고 고급 호텔에서 생활한다. 급기야 필립을 살인자로 꾸미고, 그의 여자친구 마음도 얻게 된다. 부러워하고 질시하던 필립의 인생을 송두리째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장 행복하다고 여기는 순간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 작품 '태양은 가득히'의 내용이다. 톰 리플리를 연기한 알랭 들롱은 이 영화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너무 먼 옛날의 얘기처럼 느껴진다면 1999년 영화 '리플리'의 맷 데이먼을 떠올려도 된다.

8일 이른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30)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톰 리플리가 생각났다. 이희진은 30억원에 달하는 스포츠카 '부가티'를 가지고 있었고 청담동의 200평대 빌라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투자자들에게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헐값에 산 장외주식을 비싸게 팔아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규모는 1000억원대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입이 떡 벌어지는 그의 자동차 목록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방송 등에서 주저하지 않고 자랑하던 화려한 삶이 결국 다 가짜였다는 것이다. 톰 리플리가 빼앗아 잠시 동안 만끽했던 필립의 인생이 결국 그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희진은 SNS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막노동을 전전하다 장외주식 투자를 통해 수백억대의 자산가가 됐다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벤틀리,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등 보통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고급 외제차를 거리낌 없이 사들일 정도로 돈이 많다고 과시하면서도 과거 '흙수저'였다고 밝혔다. 관련 보도 등에 따르면 그런 식으로 자신처럼 투자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었다. 그를 주식 전문가로 소개하고 드러내고 싶은 화려한 재산 목록을 눈요깃거리로 다뤘던 일부 방송들도 그 환상을 키우는 데 조력했다. 피해자들은 그의 말을 믿고 돈을 투자했고 그는 그 돈으로 자신이 만든 환상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씨는 부가티 치론의 일본 원정 구매기를 블로그에 중계하는 등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출처 : 이희진 블로그)

이씨는 부가티 치론의 일본 원정 구매기를 블로그에 중계하는 등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출처 : 이희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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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희진의 성공신화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신기루였을 것이다. 몰락은 예정돼 있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인양된 요트에 필립의 시체가 걸려있었던 것처럼 가짜는 언젠가는 드러날 운명이었다. 피해자들의 진정이 금융감독원에 잇따라 접수됐고, SNS에서 피해 사실이 공유됐다. 피해자들은 그가 과시하던 부가 사실은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였다고 여기고 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은 부에 대한 욕망이 자본주의 사회의 신분 격차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톰 리플리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이희진도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은 이희진이라는 존재를 진즉에 잉태하고 있었을 수 있다. 부를 열망했던 그는 부가티로 대변되는 최상위 부자들의 삶을 모방했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했다. SNS의 파급력에 화려함을 좇는 인간의 욕망과 장외주식시장에 대한 허술한 관리가 맞물렸다.
톰 리플리는 해변의 카페에서 경찰들이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도 모르고 '제일 좋은 것'을 주문한다. 그가 호기롭게 시킨 제일 좋은 음료는 당초 그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기 위해 흘려야 했던 다른 이들의 피와 공존한다. 이희진이 자랑하던 부가티와 개미투자자들의 눈물 역시 그렇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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