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글자인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말이다. 대학 1학년 때 문학 용어 사전에서 본 이후 이 말을 다시 떠올린 것은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지난해 개봉한 '내부자들'이란 영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 영화에 나오는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 사무실에는 큼지막한 액자가 걸려 있는데 거기에 무괴아심(無愧我心)이라고 씌어있다.
이 말은 '天知地知子知我知(천지지지자지아지)와 함께 자주 쓰인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뜻으로, 세상에는 비밀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말과 연결지어 무괴아심은 스스로 언행을 깨끗이하고 떳떳이 해 땅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로 인용된다.
문제는 무괴아심에 아전인수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부끄러움을 모를 정도로 판단력이나 도덕성이 마비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라면 하늘을 우러러봐도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확신하는 경우다. 자기 양심을 철저히 속이는 자들의 행태다. 온갖 나쁜 짓을 밥 먹듯이 일삼으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이강희가 이 사자성어를 액자로 걸어 놓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기를 기만하는 사람일수록 고위 공직자요, 재벌 기업인이며, 권력의 실세임이 드러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가. 정의는 실패하고 부패가 승리하는 게 한국 사회이며, 아무리 선한 자라도 모든 신념을 잃고 마는 것이 한국사회라는 지적을 누가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겠나.
이같이 모순덩어리인 이 나라에서도 과연 무괴아심을 실천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양심의 가책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에게 아주 엄격해져 죄인이 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를 낮춰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사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제도가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는지 확실하게 깨닫는다면 역시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검찰과 고위 관료, 재벌 기업인, 유력 언론사 간부 등 이 나라 지도급 인사들이 그럴 생각이 있느냐에 달려있다. 과연 그들은 그럴 생각이나 의지가 있을까.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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