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 장바구니 물가에 주부들 시름…"가격 묻기가 무서워요"
[아시아경제 조호윤 기자]서대문구에 사는 주부 전예리씨는 저녁 찬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인근 전통시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1000원이면 살 수 있던 작은 호박 한 덩이가 일주일새 1700원으로 2배 가까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전 씨는 "시금치, 배추 등은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품들인데 어찌나 비싸던지 가격을 묻기가 두려울 정도였다"며 "월급은 그대로인데 먹거리값은 자꾸 올라서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곧 있으면 추석이라 제수용품도 사야하는데 과일이면 과일, 야채면 야채, 생선이면 생선 어느 것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다"고 한숨지었다.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통인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한 상인은 "올해 같이 채솟값이 크게 오른 해는 없었던 것 같다"며 "폭염으로 시장에 유입되는 상품 물량자체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량이 워낙 부족하다보니 그나마 상품성 좋은 것들은 대형 음식점들을 중심으로 비싼 값에도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29일 한국농수산유통공사(aT)에 따르면 26일 기준 시금치 1kg당 소매가격은 2만510원으로 한달 새 무려 208.9%나 폭등했다. 1년 전보다는 122.5%, 일주일 기준으로도 40.2%나 오른 것이다. 도매가도 한달새 219.8% 오른 6만6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배춧값도 치솟고 있다. 같은 날 배추 1kg 도매가격은 192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73.5% 급등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145.5% 오른 것이다. 소비자들이 직접 거래하는 소매점에서의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같은 날 거래된 배추 1포기 가격은 6384원으로 전년대비 119.2% 상승했다. 한 달 기준 91.5%, 일주일 기준 19.7% 상승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작황이 부진해 출하량이 크게 감소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강서구 염창동에 사는 주부 이한빛 씨는 "일주일만에 시금치가 2배 넘게 오른 것을 보고 '추석이구나' 싶었다"며 "명절만 되면 들썩이는 장바구니 비용 때문에 남편 한 달 월급이 통째로 사라지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높은 물가 탓에 추석 차례상도 점차 간소화되는 추세다. 서울시 용산구에 거주하는 주부 이미연 씨는 "올해 추석 차례상에는 햇음식을 올리는 걸 포기했다"며 "채솟값, 과일값 등이 너무 비싸 상에 올릴 것만 간단하게 사서 올리는 걸로 신랑과 얘기했다"고 말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과일 가격도 고공행진 중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추석시기에 과일 공급은 원활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예상치 못한 폭염이 8월 내내 지속됐고, 병해충으로 인해 낙과가 크게 늘었다. 이로 인해 과일 출하량은 급감했고, 가격은 급등하게 됐다. aT에 따르면 신고 배 15kg은 작년보다 80.7% 오른 5만4800원에 거래됐다. 소매가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고 배 10개는 전년비 11.3% 오른 2만9340원이다. 백도 10개도 일주일새 6.8% 오른 1만6303원에 거래됐다. 울산에 위치한 한 배 농가는 "폭염, 외래해충 습격 등으로 인해 대목 앞두고 농사 제대로 망쳤다"며 "이때쯤이면 시장에 내다 팔 배를 수확해야하는데 상품성 있는 배가 거의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추석물가 급등에 정부도 팔을 걷고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다음달 13일까지 추석 성수품에 대해 일일수급 및 가격동향을 점검한다. 배추ㆍ사과 등 10대 성수품에 대해서는 평소대비 1.4배 높은 물량을 공급해 가격 안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조호윤 기자 hod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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