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영국, 프랑스, 룩셈부르크, 미국, 캐나다 국적의 자금이 국내 상장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미국이 올 들어 3조4280억원 순매수로 가장 많이 샀고,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1조1680억원, 8230억원 순매수로 뒤를 이었다. 이들 국가들은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해 인위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써 온 대표적인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ㆍ브렉시트) 투표 이후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경기침체를 우려해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돈을 푼 영향이 컸다.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지난 5월 -1420억원에서 6월 4660억원, 7월 4조1110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 '어닝시즌'이 막바지에 다소 주춤할 것으로 예상됐던 8월에도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1조27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7월 이후 적어도 약 5조3000억원 이상의 외국계 자금이 국내 증시에 유입된 셈이다.
◆불안한 펀더멘털…국내 투자자들은 외면=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외국인들과 달리 정작 국내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를 확신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국내 개인과 기관은 지난 7월 이후 코스피시장에서 각각 1조5500억원, 4조1900억원어치 주식을 내다 팔았다. 코스피 투자심리 역시 브렉시트 이슈로 몸살을 앓았던 지난 6월 말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업의 실적 악화 추세는 매크로(macro)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국은 지난 6월까지 52개월째 경상수지 흑자행진을 이어갔지만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드는 추세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경기둔화의 신호인 불황형 흑자가 장기간 지속되면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이 악화되고 성장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기업의 '생산→투자→고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느슨해지는 것이다.
코스피 연고점 경신의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지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3.0%에서 7월 2.7%로 내렸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3%에서 2.6%로 내렸다. 체감경기와 직결되는 국내 소비 역시 2인 이상 가구의 실질소득이 지난해 4분기부터 감소추세인 데다 소비성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보다 더 낮아졌다.
◆사드에 철강 반덤핑까지…대외환경도 불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외 상황까지 비우호적이다.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중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미국에 이어 인도까지 국산 철강제품에 반덤핑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는 등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도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수출 경쟁력를 좌지우지하는 원ㆍ달러 환율마저 14개월 만에 1100원이 무너졌다.
전문가들도 증시 상승에 기초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수급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계 자금이 단기적으로 코스피 반등에 힘을 실어줄 수는 있겠지만 추가적인 레벨업의 동력이 될 가능성은 낮다"며 "유동성을 앞세운 단기투자의 성격이 강하고 환율과 경기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고 지적했다. 경기와 환율 변동에 따라 언제든 수급이 급변할 수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 고위 관계자는 "그간 유동성을 앞세운 영국 등 유럽계 자금이 홀로 지수 상승세를 주도한 만큼 작은 변수에도 수급이 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지수와 기업 펀더멘털 간 괴리율이 커질수록 대내외 경제지표를 꼼꼼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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