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특히 서울살이란 어쩐지 '정상적'이지 않다고 자조했다. 지하철 문짝에 뺨을 부비며 출근하는, 아침에 주문한 택배가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는, 하루에 열두 시간쯤 일하고도 밤이 어둡지 않은 곳에 익숙하다는 건, 마치 '난 이제 미세먼지에 완전히 익숙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딘가 고장 난 채로 꾸역꾸역 일상을 굴리는 느낌이랄까. 인구밀도가 희박한 나라로 이민을 간 친구는 '그렇게 좁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개체를 집어넣으면 어떤 동물이라도 미쳐버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남쪽 바다 가까이서 태어난 남편 덕에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고속도로를 탄다. 그의 고향은 갯바람에 출렁이는 갈대밭이 지평선을 이루는 곳이다. 차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밤이 되면 거리의 불빛이 사그라지고 검은 하늘에 별들이 솟아난다. 5일마다 장이 열리며, 명물인 떡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고 정오가 되기도 전에 떡집은 장사를 마친다. 그곳에 가면 인간에게 '적정한' 일상의 리듬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 고혹적인 리듬에도 난 어쩐지 머뭇거리기만 한다. 서울에 가고 싶다. 아니, 서울이 보고 싶다.
고속버스에서 한참을 졸다 서울에 가까워짐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일 때 비로소 안도감이 찾아든다.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철로 연결되는 통로의 인파에 섞여들 때 나는 탄식한다. 아, 반갑고 지겨운 나의 서울! 거미줄같이 엮인 지하철 안에서 내다보이는 한강변의 노란 불빛들. 그것들은 왠지, 손을 뻗으면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 곳에 곧 몸을 누일 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키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꽃이 피든 안 피든 불이 밝든 어둡든, 고향이란 지겨워도 고향인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좋거나 나쁘거나 끈덕지게 매달리는 삶 그 자체를 닮았다. 나 같은 서울토박이도 이럴진대, 하물며 소를 키우고 참외가 익는 마을에서야. 최후의 익숙함이 흔들리는 것은 생의 뿌리가 휘청이는 공포일 거라 짐작하니, 나의 서울도 함께 슬프다.
이윤주(에세이스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