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 미로 특별전 ⑨] 해·달·여성… 세상을 품은 예술혼
김보라 큐레이터의 '내가 본 호안 미로'
[아시아경제]필자가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와 인연을 맺은 것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미술관 개관 전시를 앞두고 미로의 고향인 바르셀로나의 미로재단을 찾았다. 지중해의 빛을 받아 투명한 흰색을 자아내는 그곳은 마치 미로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듯 모두를 이끈다. 오직 미로를 위한 곳. 그 마을의 한 예술가를 오래오래 간직하고자 소중히 하는 마음들이 모여 있는 곳.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다.
비록 미로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그곳을 통해 고결한 한 예술가에게 감성적 여유로 다가설 수 있었다. 그렇게 미로는 큐레이터인 필자의 삶으로 다가왔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은 온전히 미로와 함께한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미로와 그를 아끼는 사람들을 종종 떠올린다. 수많은 예술가 중에 미로는 마치 지침이 되는 별처럼 빛난다. 그는 왜 그 오랜 시간 마음을 울리는 잔향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사물의 종교적 본질 즉 사물의 마술적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우둔해질 뿐이다." (호안 미로ㆍ작업노트ㆍ1939)
미로의 작품은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하다. 형상이 보일 듯하면서도 결코 보이는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미로가 평생을 본질로서 단순화하고자 했던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궁금함을 자아내지만 곧 그 세계 속으로 교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미로에게는 대상을 표현하는 몇 개의 기호가 있다. 그 대상들은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까이 있는 것들이다. 미로의 생각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되살아나며 기호가 되고 곧 상징이 된다.
'해'와 '달'. 미로에게 해는 미래, 달은 과거를 의미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는 사람의 '눈'이다. 과거와 미래의 나눌 수 없는 순간은 영원한 시간의 반영과도 같은 것이다. '별'. 미로의 대표적인 상징 기호인 별은 빛의 원천으로서 정신을 상징한다. 미로는 별의 내부에서 발산되는 빛이 모든 것을 움직인다고 생각했으며 그로 인해 세상의 혼돈과 평온이 동시에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여성'. 출산과 희망의 상징으로 다양한 미로의 성적 기호들은 창조의 원천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지향한다. '새'. 하늘과 땅 사이를 비행하는 새는 천상의 메시지와도 같다. 가벼움과 중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의 형상이며 신체로부터 탈피한 영혼과도 같은 존재로서 새이다.
'사다리'. 미로는 탈출의 사다리를 통해 천국으로 가는 이미지를 나타낸다. 사다리는 현세의 한계를 부정하고 정신적인 고양을 내포한다. 결국 사다리를 내릴 수 있는 대지를 부각하며 우리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무(無)'. 이는 거대한 흑색으로 표현된다. 미로는 예술이 곧 부재와 연결돼 있고 예술가들은 그러한 상태에서 창작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원'은 반복되는 우리의 삶이며, 직선과 점으로 나타나는 '수수께끼'는 결국 온전히 알 수 없는 우주에 대한 회귀로 향한다.
이처럼 미로의 모든 상징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연의 본질에 관해 끊임없이 묻고 있다. 순수함으로 본질을 탐구했던 미로는 모든 존재의 심장부에 자신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곳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 우리 안에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것, 무의식의 일부로 남아 있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담고자 한다. 이는 미로가 우리와는 분명 다른 문화적 차이를 갖고 있음에도 그의 예술을 공감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영원한 울림이 되는 이유이다.
미로와 함께했던 시간은 필자에게 두 가지 생각을 간직하도록 했다. 하나는 예술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정결한 예술적 동기가 필요하고 이는 보편적인 미적 가치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미로를 가꾸어 내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우리의 예술가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더욱 키워야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미로의 전시를 국내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미로의 작품 속에서 수수께끼처럼 숨어 있는 미로의 상징들을 발견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90년의 생에 변함없는 주제에 몰입했고 한 여인을 평생 사랑했으며 삶에 대한 철학을 예술로서 보여준 호안 미로. 그가 세상을 보는 그 마음으로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작은 길을 내어보고자 한다.
김보라 큐레이터·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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