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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들②]선박 인도시 대금 60% 받는 계약부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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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놓친 조선해운 구조조정 진짜 문제…<2> 결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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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선ㆍ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했다. 11조원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 펀드를 조성해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로써 구조조정의 큰 틀과 방향은 잡혔다. 하지만 조선ㆍ해운업의 위기를 초래한 '내부의 함정'을 제거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은 성공할 수 없고 위기는 반복된다. 이에 '제 살 깎기'식의 저가수주, 불리한 계약관행 등 고질적인 병폐를 짚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본다.<편집자주>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조선사들은 선박을 수주한 직후 선주로부터 선수금 명목으로 20%의 대금을 받는다. 이후 스틸 커팅, 탑재, 진수, 인도 등 주요 단계마다 20%씩을 받아 선박을 건조한다. 이처럼 5차례에 걸쳐 20%씩 균등하게 나눠 대금을 받는 결제 방식을 '스탠더드'라고 한다. 또 다른 결제 방식인 '톱 헤비'는 수주 계약 시 전체 대금의 40%를 받고 나머지 60%를 인도할 때 받는 방식이다. 2008년 이전까지는 선박 발주가 넘치면서 스탠더드와 톱 헤비 방식의 계약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 발주가 급감하면서 선박을 인도할 때 대금의 절반 이상을 받는 '헤비 테일' 방식이 급증했다. '꼬리가 무겁다'는 뜻 그대로, 건조의 마지막 단계인 인도 시에 수주 대금의 절반 이상인 50~60%가 지급되는 방식이다. 예컨대 1000억원짜리 선박을 수주했다면 계약 단계부터 4차례까지는 100억원씩 받고, 선박 인도 시 나머지 600억원을 한꺼번에 받는다. 전 세계적으로 발주가 급감하자 헤비 테일 현상은 더욱 심화돼 계약과 설계 단계에서는 5~10% 정도의 계약금만 지불하고 최종 인도 시 무려 70~80% 넘는 잔금을 한꺼번에 치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이 같은 헤비 테일로 수주할 경우 조선사의 재무구조가 극도로 악화된다는 점이다. 수주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배를 완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주에 완공된 배를 넘길 때까지 조선사가 금융권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이다. 차입금 증가로 유동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마디로 헤비 테일은 조선소가 위험 부담을 안고 외상으로 배를 만드는 방식이다. 특히 지난해처럼 유가 하락으로 수지가 맞지 않게 된 발주처가 선박 인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온갖 하자 문제를 제기하면, 공기가 지연되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중공업의 에지나 프로젝트와 익시스 프로젝트, 현대중공업의 고르곤 프로젝트, 대우조선해양의 송가 프로젝트 등이다. 이들 모두 헤비 테일 방식으로 수주한 계약들이다. 수주 금액이 수조 원에 달하는 이 공사들이 예상과 달리 사업이 지연되면서 국내 조선 '빅3'에 대규모 손실을 안겼다. 빅3의 차입금 규모가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ㆍ현대삼호중공업 포함)의 차입금 규모는 2010년 말 10조원에서 작년 말 23조9000억원으로 5년 새 14조원 가까이 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헤비 테일 방식으로 계약하다 보니 배를 거의 완공하고도 발주처에 대금을 청구하지 못해 받지 못한 대금(미청구 공사)이 수조 원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은 앙골라의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의 드릴십 1ㆍ2호기를 수주해 현재 공정률이 90%가 넘었지만 미청구 공사 대금이 각각 5073억원과 4570억원이나 된다. 삼성중공업도 2013년 미주 지역 선주로부터 발주 받은 드릴십을 90%가량 건립했지만, 아직까지 4074억원을 받지 못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올 1분기 조선 3사의 미청구 공사 대금은 삼성중공업 3조1314억원, 대우조선해양 1조4857억원, 현대중공업 2036억원 등 총 4조8200억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헤비 테일 수주 방식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조선 시황이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정부가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나서 조선업의 리스크 요인을 잘라내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민 한국해양대학교 선박금융학과 교수는 "헤비 테일 방식이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는 없다"면서 "여전히 칼자루는 발주사들이 쥐고 있고 발주사가 선가 하락의 위험을 방어할 수 있는 헤비 테일을 포기할 요인도 없는 만큼 고사 위기에 처한 조선업에 대한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황보창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 또한 "금융사들이 비 올 때 우산 뺏는 격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조선사 지원을 위해 선박제작금융 확대 등 정부 중심의 다양한 노력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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