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페라' 두편 찾아온다…사랑이라는 병, 아리아라는 약
국립오페라단 '루살카', 서울시오페라단 '
국립오페라단 '루살카'
비극적 사랑 다룬 체코판 인어공주
물의정령 루살카역에 소프라노 서선영
김학민 "오페라의 '오'자도 몰라도 재미"
서울시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시골 부자처녀와 가난한 청년 이야기
주인공 아디나역에 소프라노 홍혜란
이건용 "3대가 즐길 수 있는 작품"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사랑을 노래하는 오페라 두 편이 찾아온다. 국립오페라단의 '루살카'와 서울시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이다.
'체코판 인어공주'라 불리는 '루살카'는 한국 초연이지만 이야기는 익숙하다. 다만 동화보다 '수위'가 높다. 김학민(54) 국립오페라단장의 "마니아부터 오페라의 '오'자도 모르는 청중까지 안고 가겠다"는 운영 방침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사랑의 묘약'은 국내 관객이 즐겨 찾는 오페라다. 시골 마을의 아리따운 부자 처녀와 가난뱅이 청년의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 이건용(69)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어린이, 부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동화가 필요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3대가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두 작품에 모두 '약'이 등장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하나는 '물의 정령'을 인간으로 바꿔주는 약, 또 하나는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약이다. 어떤 '묘약'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루살카=지난 26일 오페라극장에서 리허설을 했다. 물의 정령 루살카 역은 2011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서선영(32)이 맡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국내 전막 오페라에 데뷔한다.
커다란 보름달이 보헤미아의 숲속 호수를 환히 비추며 막이 걷힌다. 암사슴을 사냥하다 길을 잃고 숲을 헤매던 왕자가 물가에서 목을 축인다. 루살카는 이내 왕자를 사랑하게 되고, 아버지 보드닉(베이스 손혜수)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인간이 되길 갈망한다. 루살카는 결국 마녀 예지바바(메조소프라노 양송미)를 불러 소원을 이루어 달라 노래한다.
"깊은 하늘 속 달님/잠깐 멈추시어 내 사랑이 어디 있는지 말해 줄래요?/그에게 내 두 팔이 그를 안고 있으니/잠시 잠깐이라도 꿈속에서나마 나를 기억해달라고 말해주세요."
대표적인 아리아로서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달에게 부치는 노래' 중 한 대목이다. 꿈결 같은 하프 전주가 흐르고 서선영은 풍부한 성량과 섬세한 음감으로 인간이 되고픈 루살카의 간절함을 표현해냈다.
'루살카'는 안토닌 드보르작의 오페라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열한 편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1901년 3월31일 프라하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 푸케의 동화 '운디네'와 이를 바탕으로 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토대로 만들었다.
루살카는 예지바바가 준 약을 먹고 목소리를 잃는 대신 인간이 된다. 2막이 열리고 루살카는 보헤미안 숲을 떠나 왕자와 함께 인간 세상의 궁궐로 간다. 왕자는 루살카의 신비로움에 반해 사랑을 맹세해 놓고 이내 외국 공주에게 빠진다. 루살카는 왕자의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드보르작은 루살카를 통해 자연의 순수성과 인간의 타락을 대비시키려 했다. 그는 세기말의 불안 속에서 퇴폐적인 도시 문명을 혐오한 사람이었다. 연출을 맡은 김학민 단장은 2막 궁궐 장면을 통해 이런 드보르작의 의도를 매우 충격적으로 그려낸다. 붉은 무대 위 말 못하는 루살카를 둘러싸고 인간들은 조롱하듯 발가벗고 집단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연기를 한다. 이 작품이 '15세 이상 관람가'인 이유다.
루살카는 결국 보헤미아의 숲으로 돌아간다.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던 왕자는 루살카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키스해 달라'고 호소한다. 루살카의 입맞춤은 곧 죽음을 뜻한다. 그녀는 '죽음의 키스'를 피하지 못하고, 끝내 쓰러진 왕자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잘린 거목과 말라비틀어진 호수, 그 위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한 여인의 절규가 흐른다. "내게 이런 운명을 가져다 준 모든 것을 보시어/하느님/부디 이 사람의 영혼에 자비를 베푸소서." (28일~5월1일, 서울 예술의전당)
◆사랑의 묘약=지난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예술동 5층에서는 '사랑의 묘약' 연습이 한창이었다. 젊고 애교 많은 농장주의 딸 아디나와 하사관 벨코레의 결혼잔치. 사과, 포도…. 빛깔 좋은 과일과 진수성찬이 넘친다. 그런데 아디나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그를 매일 따라다니던 '네모리노'가 보이지 않는다.
이날 '아디나' 역은 소프라노 홍혜란(35)이 맡았다. 홍혜란은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자다. 그 역시 이번 작품으로 국내 무대에 데뷔한다.
의상도 무대도 갖춰지진 않았지만 가수들의 진지함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긴 파마머리를 머리띠로 넘긴 이탈리아 연출가 크리스티나 페졸리(53)는 헛기침하는 연기까지 가르치며 손짓과 표정을 섬세하게 지적했다.
'사랑의 묘약'은 이탈리아의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쓴 오페라다. 1832년 5월12일 밀라노 테아트로 델라 카노비아나에서 초연했다. 홍혜란은 "한국에서 오페라를 한다면 이 역할로 시작하고 싶었다"며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의 묘약은 선율이 아름답고 음역대가 넓으며 고난도의 기교가 필요한 작품이다.
아디나는 농부 '네모리노'(테너 허영훈)와 '벨코레'(바리톤 한규원)로부터 동시에 청혼을 받는다. 아디나가 눈길도 주지 않자 순진한 네모리노는 '둘카마라'(베이스 양희준)에게서 약을 산다. 마시면 누구든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묘약이다.
사실 그 약은 '와인'. 아무런 효능이 없다. 술에 취해 무작정 들이대는 네모리노 때문에 아디나는 자존심이 상한다. 홧김에 벨코레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런데 결혼식 날 둘카마라의 노래 '나는 부자이고, 당신은 아름다워요'를 듣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가 네모리노임을 깨닫는다.
아디나는 자신이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불안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를 본 네모리노는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부르며 기뻐한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1988년 2월24일 독일 베를린 오페라하우스에서 이 곡으로 무려 167번이나 커튼콜을 받았다.
새침 떨던 아디나는 오페라의 끝에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의 약이 좋은 걸 난 알지만 난 더 좋은 걸 가졌어요. 사랑의 눈길과 부드러운 미소죠." 사랑에는 진심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동화 같은 결말로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5월 4~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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