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조선의 동성애女 …'세종 며느리' 봉씨의 그날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이기쁨의 '리얼스토리 시간여행' - 몸종과 스캔들 일으킨 세자빈

[아시아경제 이기쁨 기자]태정태세문단세. 어린 시절 조선 왕들의 이름을 외울 때 맨 먼저 이 일곱 자로 시작했다. ‘태’자 두 개와 ‘세’자 두 개가 적절하게 박혀 운율도 멋졌다. 하지만 저 일곱 자에는 피냄새가 훅 밀려온다.

왕조의 초기는 사회도 불안하고 왕실도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이방원(태종)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 사건이 조선 개국의 문전에 피를 뿌렸고, 수양대군(세조)이 형제·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폭거가 후속편처럼 왕국을 뒤흔들었다.
그 가운데쯤에 딱 2년씩 왕좌에 있었던 정종과 문종을 나는 가끔 들여다본다. 불안한 정국 속에서 잠깐 앉았다 내려온 두 사람. 어쩐지 비슷한 애환을 느끼게 한다. 물론 문종은 세종 시절 20년 동안 세자로서 정치에 참여했고, 처음으로 맏이로서 왕위를 계승했던 점이 정종과는 다르다. 또 병약하여 돌아간 점도 왕위를 양도한 정종과는 차이가 있다.

여하튼 문종은 성품과 능력은 나무랄 데 없었으나 여자 관계에는 좀 비리비리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부인은 휘빈 김씨였다. 세자가 빈을 잘 찾지 않자, 김씨는 그 마음을 잡으려고 동궁이 좋아하는 궁녀의 신발 뒷굽을 잘라다가 불에 태운 재를 세자가 마시는 술에 몰래 타기도 했다. 두 마리의 뱀이 교접을 할 때 흘린 정기를 수건으로 닦아서 차고 있으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압승술(壓勝術·주술로 화를 누르는 일)도 썼다. 그 외에 마초라는 풀을 먹고 자란 나비를 말려서 차고 다니기도 하고, 붉은 박쥐 가루를 비방으로 썼다고 한다. 세종이 이것을 알고 방술이 요망스러워 국모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2년 만에 이혼시켰다. 세종은 종묘에 가서 이렇게 알렸다. “맏며느리가 덕을 잃어 세자의 배필이 될 수 없습니다. 대의를 위하여 사사로운 은의를 끊고 폐빈을 고하노니 밝게 살피소서.”

후세 사람들은 이 여인을 드세고 집착이 강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혹자는 그녀가 매력이 없었고 못생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랬을까? 그녀는 휘빈(徽嬪)이라 불렸다. ‘휘(徽)’는 너무 예뻐서 눈이 번쩍 뜨이는 그런 미색을 함의하지 않는가. 그런 이름을 붙인 데는 상응하는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김씨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동궁은 눈을 주지도 않고, 잠자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소헌왕후(어머니)의 주변에서 궁녀들과 자주 놀았다. 결혼 당시 세자는 14세였고, 세자빈은 17세였다.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처음에는 너무 어려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독수공방으로 지내는 날이 길어지니 초조해졌다. 내가 뭐가 모자라서 저러는 거지? 남자를 끄는 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처방을 구했다. 궁궐에 떠도는 방술을 써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드러난 것은 1429년, 그녀 나이 19세 때였다. 지금의 나이와 비교해 생각하기는 난감하지만, 측은지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폐빈이 되자 무인이었던 아버지 김오문은 아내와 폐빈 김씨를 죽이고 자결했다. 가문의 명예를 크게 더럽혔으니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세종에게도, 세자에게도 이 일은 트라우마처럼 남았을 것이다.

휘빈이 쫓겨난 지 석 달 뒤 순빈(純嬪) 봉씨가 세자빈으로 간택됐다. 나는 또 호칭으로 관상을 본다. 휘(徽)의 미색이 색을 밝히는 것으로 드러났으니 이번에는 좀 순진해 보이는 얼굴의 여인을 택해보자. 이런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예쁘기보다 시원스럽게 보이는 여인을 찾아냈다. 그게 순빈이었다. 나이도 세자와 동갑인 19세였고 휘빈처럼 위압적으로 늘씬하고 풍만하지도 않은 아담사이즈의 귀여운 여자였다.

그런데 얄궂게도 세자가 여전히 시큰둥한 것이다. 아버지 세종은 답답했다. 세자를 불러 빨리 후사를 잇으라 명령해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문제가 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까다로운 건가? 뭘 모르는 건가? 혹시 폐빈한 휘빈 김씨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이때 신하 하나가 건의했다. “명문가의 덕 있는 규수를 더 골라 뽑아서 후사를 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자 후궁(종4품) 3명이 시중을 들게 됐다. 세자는 후궁들과 어울려 놀 뿐 봉씨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후궁 중에서 양원 권씨(단종의 어머니)가 임신을 했다. 얌전해 보이던 봉씨는 이때부터 뜻밖의 행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태기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은 이 소식을 듣고 조용한 곳으로 그녀의 거처를 옮겨주며 특별 대접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씨는 “낙태를 했다”고 주장했다. 단단한 물건이 형체를 이루어 나왔는데 지금 이불 속에 있다고 말했다. 왕이 늙은 궁궐 여종에게 시켜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불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종은 얼마나 아이가 갖고 싶었으면 저럴까 하고, 며느리를 동정하면서 문제를 삼지 않았다.

조선 초기 동성애 스캔들로 충격을 준 세종의 며느리 세자빈 봉씨.

조선 초기 동성애 스캔들로 충격을 준 세종의 며느리 세자빈 봉씨.

AD
원본보기 아이콘


봉씨는 조선 최초의 동성애 여인으로 낙인이 찍혀 있기에, 그녀의 ‘이상함’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흠을 잡는 에피소드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우선 음탕했다는 혐의가 있다. 세자빈이 된 뒤에 그녀는 <열녀전>을 배워야 했다. 그걸 읽던 봉씨는 “이걸 배운 뒤에 어떻게 생활할 수가 있겠는가”라며 책을 뜨락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열녀가 되기는 글렀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녀는 세자가 뜨락에 있으면 “안방으로 들어오실 일이지 공연히 밖에는 왜 서 계시느냐”고 소매를 끌었다. 이 소문을 들은 세종은 “상서롭지 못하도다”라고 혀를 찼다. 사실 그렇지만 자나깨나 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빈으로서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음탕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음이 바쁘니 뜨락만 얼쩡거리는 세자를 보는 것이 답답한 게 인지상정 아닐까.

좀 더 변태스런 이야기도 있다. 시녀들이 쓰는 변소에 가서 용변 보는 것을 훔쳐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술에 취해 여종들에게 업고 뜨락을 걸으라 하기도 하고, 사랑노래를 불러 달라고도 요구했다 한다. 용변 보는 것을 훔쳐봤다는 것은 모르겠지만 여종들에게 한 행위는 그리 ‘오버’한 것은 아닌 듯하다. 뭐가 미우면 뭐까지 미워진다는 게 딱 이 짝이다.

여하튼 봉씨의 최대 사건은 ‘소쌍 스캔들’이다. 궁궐 여종인 소쌍이 세자빈 봉씨와 거시기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자들의 동성애를 당시 사람들은 대식(對食)이라 불렀다. 세자가 이 사실을 먼저 알았다. 궁궐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소쌍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가 정말 빈과 같이 자느냐?” 깜짝 놀란 소쌍이 대답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사오나, 빈께서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옵니다. 제가 곁을 떠나면 몹시 화를 내면서, 왜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좋아하지 않느냐고 소리를 지르십니다.” 세자는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소쌍은 대답했다. “빈께서 저를 좋아하시는 방법이 보통과는 다르옵니다. 저는 무섭습니다.” 세자는 가만히 말했다. “알았도다. 나와 한 얘기를 입 밖에 내지 말거라.” “예, 마마.”

그런데 세자빈에게 연적이 생겼다. 소쌍이 단지라는 여종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두 여종은 함께 자기도 했다. 봉씨는 질투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소쌍을 꾸짖으며 다시는 단지와 놀지 말라고 명령했다. 다른 여종을 시켜 소쌍을 감시하도록 했다. 소쌍에 대한 봉씨의 집착은 커졌다. 밤뿐만 아니라 낮에도 대식을 했다. 봉씨의 이불과 베개는 시중드는 여종들이 치우는데 소쌍과 함께 잔 날은 봉씨가 직접 치웠다. 소쌍에게 몰래 이불을 세탁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궁녀들의 입을 통해 궁궐에 파다하게 퍼졌다. 급기야 소문을 들은 세종이 소쌍을 불렀다. “정말 동침을 했느냐?”

“지난해 동짓날에 세자빈께서 저를 불러 내전으로 들어오게 했고 같이 자자 하셨습니다. 저는 사양했으나 빈께서 윽박지르셔서 마지못해 옷을 한 반쯤 벗었는데…….”

“허어…….”

“그런데 빈께서 병풍으로 저를 와락 당겨서는 나머지 옷을 다 빼앗고 강제로 눕혔습니다. 그러고는 남자와 교합하는 형상으로 서로를 희롱하였사옵니다.”

“시녀와 종들이 서로 동침하면 곤장 70대를 때려 처벌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세자빈이 이런 일을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여봐라, 당장 세자빈을 들게 하라.”

세종은 봉씨에게 다시 물었다. 봉씨는 말했다. “아니옵니다. 억울하옵니다. 저와 그런 것이 아니고 소쌍이 단지와 그런 짓을 한 것입니다. 두 년은 더불어 서로 좋아하여 밤낮 없이 목을 맞대고 혓바닥을 빨았습니다. 저희끼리 한 짓으로, 저는 처음부터 그런 일이 없었사옵니다.”

세종은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지는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저는 단지…… 우연히 그들의 야릇한 짓을 보았습니다. 놀라고 떨렸습니다.”

“그 말에 거짓이 있다면 어떻게 될지 알고 이러느냐?”

동성애 사건은 조정을 발칵 뒤집었다. 대신들은 봉씨를 극형에 처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종은 그녀를 폐서인하고 궁궐에서 내쫓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세자빈이 된 지 7년 만인 1436년 11월이었다. 왕비 소헌왕후는 이후 궁궐 내에서 일어나는 궁녀들의 음행을 조사해 동성애를 뿌리 뽑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한편 봉씨에게는 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봉여는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딸의 목에 감고 이렇게 말했다. “자, 목을 매달아라. 다시 태어날 때는 사내가 되어서 나오너라.”



이기쁨 기자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