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경선 승리를 눈 앞에 둔 것 같았던 트럼프의 최근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민감한 이슈에 잇따라 실언을 하고도 오히려 남 탓으로 돌리며 더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 되고 있다.
치명타는 낙태 여성 처벌론이었다. 트럼프는 지난 달 29일 MSNBC가 주최한 타운 홀 미팅에서 낙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별 생각 없이 "(낙태를 한 여성에게도) 어떤 형태의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낙태 시술엔 반대해도 낙태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수용해온 보수층조차 깜짝 놀랄 발언이었다.
트럼프는 갑작스런 '한일 핵무장론'에 대해서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달 28일 CNN의 타운 홀 미팅에서 미국의 방위비 지출 감축을 위해 '한일 핵무장 허용론'을 꺼내 주변을 놀라게했다. 이에대해 여론은 즉각 들끓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핵과 한반도 문제에 무지한 대선 후보는 위험하다"고 면박을 줬다.
트럼프는 오히려 정면돌파 기세다. 그는 지난 2일 위스콘신주에서 가진 유세에서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면 "끔찍한 일이겠지만, 그들이 한다면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부채가 19조 달러가 되는 상황에서 세계의 경찰국가 될 수 없다"면서 "여러분의 행운을 빈다, 좋은 시간 되기를"이란 농담까지 덧붙였다.
사정이 이쯤 되자 트럼프가 여성보호, 핵, 폭력 문제 등 중요 이슈에 대해 아예 정리된 생각조차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주말 "이제 뒤죽박죽 하는 것이 트럼프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면서 "그의 지지자들조차 이런 행보에 당황하고 있다"는 칼럼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은 오는 5일 위스콘신주 예비선거를 앞두고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그를 추격하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 10%포인트 차이로 뒤쳐지고 있다. 위스콘신 주에서 트럼프가 패배할 경우 그를 둘러싼 자격 시비와 위기론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전망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