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보 100보' 얘기가 우리 사회에서 애용되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의 불건전한 근본주의적 태도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이 말은 현실을 반영하는 관용어를 넘어 하나의 구호처럼 현상과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돼 많은 사안들에서 현실을 바꾸는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권력에 대한 냉소와 만날 때 그 위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민나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라는 일본어풍의 유행어, '도긴개긴'이라는 토속어도 그에 가세해 일종의 주문이 된다.
분명 이번 총선을 앞두고 벌어져 온 혼탁상이 초래한 총체적인 실망이 그러한 악담과 비난을 불러올 만하다.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면서 법적 선거구가 몇 달 간 공백상태였던 무법 사태라든가 공천심사 과정의 구태가 그런 냉소를 가져올 만하다.
그러나 지난 국회, 이번의 선거를 과연 최악이며 막장이라는 말로만 단정할 수 있을까. 조금만 들여다보면 지난 국회에서 많은 '선진적인' 시도들도 있었던 것을 보게 된다. 이번의 국회가 만약 최악이었다고 한다면 그건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그것이어야 할 것이다. 국회와 정치에 대한 높아진 기대치에 비례한 상대적인 평가로서의 최악이라고 해야 공정할 것이다. 이번 선거나 공천에 대해서도 '막장'이라고 간단히 규정할 수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상향식 공천이라든가 숙의 배심원제 등 여러 새로운 제도들이 논의됐거나 시도됐다. 그것이 많은 현실적 사정들에 막혀 무산되거나 어설프거나 혼란스럽게 이뤄졌더라도 그 미완의 시도는 하나의 진통이라는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분명 퇴행도 있었지만 진일보도 있었다. 필요한 것은 왜 후퇴하고 실패했는지에 대해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진보를 만들었고, 무엇이 후퇴를 초래했는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작은 차이에 주목하는 것. 그것은 유권자의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는 국민들의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정치가 만약 타락했다고 한다면 정치의 타락은 홀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유권자가 작은 차이를 보려고 하지 않을 때, 50보나 100보나 똑 같다고 여길 때 정치는 늘 100보에 머물 것이다. 그것이 정치로부터의 복수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