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완벽한 직선에 매혹되는 것은 자연에 거역하는 직선을 보고 싶어 하는 열망이다. 자연은 직선을 거부한다. 그 무늬와 형태에서도, 그 운동에서도 직선을 취하지 않는다. 강물의 굽이침, 산 능선의 너울들, 직선으로 내리꽂는 듯하지만 실은 휘어지고 춤을 추는 빗줄기. 고대 유클리드 기하학도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무한한 직선을 가정하고 이론을 전개했으며, 현대의 과학은 궁극의 직선으로 여겨졌던 빛조차도 꺾어지고 굽어진다는 것을 거듭 증명하고 있잖은가.
지난주에 집권 만 3년을 넘어선 현 정부를 이끄는 이들에 대해 어떤 '애정 어린' 지적을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직선주행의 유혹과 함정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비판보다는 '애정'의 발로다. 그 애정이 전적으로 진심인 것은 직선을 주행하는 것의 어려움, '독주(獨走)'의 외로움과 고통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직선은 매우 좁은 길일 수밖에 없다. 직선-혹시 그것이 가능하다면-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돼 있다. 그래서 청정 무결점의 '순수한' 이들로 선발해야 한다. 그렇게 엄선된 이들은 단 한 치라도 삐끗하지 않도록 매 순간 '초고고도'의 긴장과 집중을 견지해야 한다. 참으로 고행(苦行)인 것이다. 현 정부의 지난 3년이 적잖게 힘겨워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조금은 짐을 나눠서 지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 같은 연민의 심정에서 민주정체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인 권력분립에 대해서 좀 더 폭넓게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분립과 분권은 흔히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제시되지만 거기엔 또 분담과 상조의 취지가 있다. 분립을 통해 일을 나누고, 협력하며 함께 짊어진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국가경영의 업무가 점점 방대해질수록 더욱 많이 요청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의 복잡도를 생각할 때 더욱 분명해지는 측면이다. 한국은 현대사회의 복합적인 요인들에다 남북분단 등의 특수한 사정이 더해져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복잡도가 높은 사회랄 수 있다. 수많은 요인들이 종횡으로 교차하고 얽혀 있다. 이런 사회에선 '획기적'이나 '일거에' 식의 해결책은 있기 힘들다. 예컨대 청년실업이니 노동개혁이니 하는 문제들이 하나의 법률로 '광속 돌파'될 수는 없다.
이제 채 2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2년도 결코 100m가 아니다. 인공의 경기장이 아닌 현실에선 직선으로 난 길이란 없다. 그걸 찾으려고도 만들려고도 하지 말기를. 일직선을 최단 시간에 달리려 하지 않는다면, 짐을 나눠지려고 한다면 오히려 더 빨리, 더 가볍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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