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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박근혜 정부, 무거운 짐 혼자 지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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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논설위원

이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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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100m 경주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현실에서 부재하는 것에 대한 열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속도가 실현되는 것에 대한 환호다. 또한 그 열광은 그 속도가 펼쳐지는 공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절대 직선을 그어 놓은 듯한 트랙,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직선을 구현한 것에 대한 열광인 것이다.

우리가 완벽한 직선에 매혹되는 것은 자연에 거역하는 직선을 보고 싶어 하는 열망이다. 자연은 직선을 거부한다. 그 무늬와 형태에서도, 그 운동에서도 직선을 취하지 않는다. 강물의 굽이침, 산 능선의 너울들, 직선으로 내리꽂는 듯하지만 실은 휘어지고 춤을 추는 빗줄기. 고대 유클리드 기하학도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무한한 직선을 가정하고 이론을 전개했으며, 현대의 과학은 궁극의 직선으로 여겨졌던 빛조차도 꺾어지고 굽어진다는 것을 거듭 증명하고 있잖은가.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듯, 인간의 문명은 결국 자연의 모방이다. 인간의 삶, 사회의 작동도 결코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는 결코 진보에 대한 부정, 발전에 대한 부인이 아니다. 사회와 역사는 길게 볼 때 나아가고 발전하더라도 결코 최단코스를 정주행으로 직진해 가는 게 아니라는 것, 그 교훈을 얻는 데 인류는 수천 년간의 우여곡절과 파란이 필요했다. 직선 주행의 유혹이 빚어낸 파탄과 비극의 점철을 통해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좀 더 성숙한 관점이자 실제적인 관점을 얻게 된 것이다.

지난주에 집권 만 3년을 넘어선 현 정부를 이끄는 이들에 대해 어떤 '애정 어린' 지적을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직선주행의 유혹과 함정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비판보다는 '애정'의 발로다. 그 애정이 전적으로 진심인 것은 직선을 주행하는 것의 어려움, '독주(獨走)'의 외로움과 고통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직선은 매우 좁은 길일 수밖에 없다. 직선-혹시 그것이 가능하다면-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돼 있다. 그래서 청정 무결점의 '순수한' 이들로 선발해야 한다. 그렇게 엄선된 이들은 단 한 치라도 삐끗하지 않도록 매 순간 '초고고도'의 긴장과 집중을 견지해야 한다. 참으로 고행(苦行)인 것이다. 현 정부의 지난 3년이 적잖게 힘겨워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조금은 짐을 나눠서 지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 같은 연민의 심정에서 민주정체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인 권력분립에 대해서 좀 더 폭넓게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분립과 분권은 흔히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제시되지만 거기엔 또 분담과 상조의 취지가 있다. 분립을 통해 일을 나누고, 협력하며 함께 짊어진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국가경영의 업무가 점점 방대해질수록 더욱 많이 요청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의 복잡도를 생각할 때 더욱 분명해지는 측면이다. 한국은 현대사회의 복합적인 요인들에다 남북분단 등의 특수한 사정이 더해져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복잡도가 높은 사회랄 수 있다. 수많은 요인들이 종횡으로 교차하고 얽혀 있다. 이런 사회에선 '획기적'이나 '일거에' 식의 해결책은 있기 힘들다. 예컨대 청년실업이니 노동개혁이니 하는 문제들이 하나의 법률로 '광속 돌파'될 수는 없다.
복잡하고 방대한 일들을 한 사람의-또는 그 주변의 소수의-초인적 역량과 헌신만으로, 초애국적인 열정과 의지만으로, 영도(領導)적인 혜안과 집념으로만 감당하려 하지 말기 바란다. 스스로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얹지 말았으면 한다. 자신의 책무에 너무 가혹한 고독을 부여하지 말았으면 한다. 분립과 분권을 단지 의장(意匠)으로 삼으려 하는 건 민주주의 원리의 훼손 이전에 그 자신의 손실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제 채 2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2년도 결코 100m가 아니다. 인공의 경기장이 아닌 현실에선 직선으로 난 길이란 없다. 그걸 찾으려고도 만들려고도 하지 말기를. 일직선을 최단 시간에 달리려 하지 않는다면, 짐을 나눠지려고 한다면 오히려 더 빨리, 더 가볍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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