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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물려주는 것? 나의 노후용!…커지는 주택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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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오명자씨(72)의 삶은 '뒷바라지'가 대부분이었다. 남편은 8남매 중 둘째이자 장남이었고, 오씨 부부는 시동생들 공부시키는데 청춘을 다 바쳤다.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이제는 1남2녀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학비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경찰공무원이었던 남편은 일찌감치 퇴직해 건축업과 양돈업 등에 손을 댔지만 신통치 않았고 병까지 얻었다. 오씨는 꽃가게를 운영하고 섬유공장에서 일하면서 수십년간 가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언감생심, 노후 준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공장 일을 그만둔 후 남은 것은 80㎡짜리 아파트 하나가 전부였다. 자녀들에게 매월 용돈을 받아 그럭저럭 살아갔으나 남편의 지병이 악화되면서 의료비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다가 주택을 담보로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혹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내가 조금 어렵더라도 참아서 어렵게 사는 아들에게 이 집이라도 하나 물려주고 싶었어요. 늙은이가 좀 여유있게 살아본들 뭐하나 싶기도 해서요.” 한편으로는 평생 고생해서 남긴 집인데 주택연금 받다가 일찍 죽으면 집만 날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돈 아끼려고 외출도 하지 않고 살았다. “사는게 그저 연명한다는 느낌이 드는 생활”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아껴봐야 병원비나 경조사비 등 꼭 나가야할 돈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자녀들에게 용돈 더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것은 주택연금 밖에 없었다.

어렵게 마음 먹고 상담을 해보니 조기 사망시에도 집값에서 연금수령액을 빼고 남은 돈은 자녀들에게 돌아가도록 돼 있고, 장수해서 수령액이 집값을 넘어가도 사망 때까지 계속 받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진작 가입할 걸’ 싶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걸림돌이었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은 그야말로 ‘쿨’했다. “엄마는 건강해서 100살까지는 살텐데 30년 지나서 낡은 아파트 받아서 뭐해요. 걱정말고 빨리 신청하세요.” 고마웠다.
매월 수령액은 30만원가량이지만 노후 생활의 여유를 찾게 해주기에는 충분했다고 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자녀들에게 받는 용돈까지 합하면 이제는 “돈 걱정은 크게 없이 산다”고 했다.

“월급 타는 기분이지요. 지금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외식도 할 정도는 돼요. 주택연금을 타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집 물려주는 것보다는 부모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자식한테 더 큰 선물이지 않을까 싶네요.”

집은 상속용이라는 오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주택금융연구원이 60~84세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주택연금 수요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상속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2008년 12.7%에서 지난해 24.3%로 크게 늘어났다.

주택연금 이용 의향이 있는 가구의 경우 노후대책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46%, ‘매우 부족’도 6.7%에 이르렀다. ‘보통’이라는 답은 30.2%였다.

이를 반영하듯 주택금융공사 주택연금 가입자는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7년 7월 출시된 주택연금의 가입자는 지난 15일 3만명을 넘어섰다. 1만번째 가입자가 탄생하기까지 5년, 2만번째까지 22개월, 3만번째까지는 20개월이 걸렸다. 증가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달에는 신규로 717건이 가입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나 급증했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며 소유 주택을 담보로 해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매월 노후생활자금을 지급받는 국가 보증 역모기지론 상품이다.

한국 고령층의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택은 보유하고 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어서 쪼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건복지부의 ‘2014년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60세 이상 고령층 가구의 71.2%가 자가 주택에서 거주하며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80%가량이 부동산이다.

고령층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6.6%로 낮은 수준이자만 소득과 비교한 부채 비율은 93.9%에 이른다. 결국 자산을 현금화하는 연금의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을 위해 재산을 사용하겠다는 비율은 2011년 9%에서 2014년 15.2%로 상승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같은 기간 10.5%에서 21.6%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과거 집값 급등기에는 시세차익을 기대하며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오를대로 올라 높은 시세차익을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주택연금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5년까지 주택연금 가입자를 33만7000명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올해 2분기에 출시될 ‘내집연금 3종세트’가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다.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사람이 60대 이후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연금 일부를 일시인출해 기존 대출을 상환하도록 해준다. 이자 부담 대신 오히려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3억원짜리 주택에 살면서 매달 19만원의 이자를 내던 60세의 경우라면 26만원의 연금 수령이 가능해진다.

주택연금 가입 대상이 아닌 40~50대가 보금자리론(장기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서 향후 주택연금 가입을 약속하면 보금자리론 금리를 낮춰주고 인출 한도는 확대한다. 일정 소득이나 자산기준 이하의 고령층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연금을 지급하는 우대형도 검토되고 있다.

고제헌 주택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화 심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 도래는 자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고령층의 빈곤 수준이나 공적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고려할 때 향후 주택연금은 고령층의 주된 소득 원천으로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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