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도우락 레몬[사진=할렘 글로버트로터스 공식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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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묘기 농구'의 대부 메도우락 레몬이 지난 29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콧데일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83세. 미국 전역은 레몬의 죽음을 슬퍼했다. 미디어가 앞 다퉈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고, 농구계도 안타까워했다.


레몬은 묘기 농구에서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농구에는 텔레비전이나 경기장에서 보는 '실전 농구' 외에 '묘기 농구'라는 분야가 따로 있다. 축구에서 화려한 발기술과 볼 트래핑으로 공연을 하는 '프리스타일 축구'가 전문 분야로 인정받고 있는 것과 같다. 미국에서 시작된 묘기 농구의 선두주자는 레몬이 뛴 할렘 글로버트로터스였다. 할렘은 1927년 스포츠마케팅사였던 에이브 새퍼스타인이 할렘가에 거주하던 흑인들로만 조직한 무 연고팀이다. 1920년대 시카고 일대를 주로 돌던 할렘은 세계 각지로 무대를 넓혀 지금까지 백이십 개국에서 이만 경기를 뛰었다. 2013년 2월 26일에는 데니스 로드먼(54)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경기는 치열한 승부보다 공연에 더 가깝다. 선수들은 프로리그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한 개인기를 선보였고 짜 놓은 각본대로 움직였다. 사람들의 배꼽을 잡는 익살스러운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간혹 프로팀들의 연습경기에서 진지한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잠시 접어뒀던 농구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농구해설가 손대범(36)씨는 "할렘은 1900년대 초 전 세계를 돌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였던 윌트 체임벌린(1999년 10월 12일 사망)도 뛴 적이 있다. 최근에는 약간 침체기를 겪고 있다. 그 분야에서 큰 인물로 통하는 레몬이 사망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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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도우락 레몬[사진=할렘 글로버트로터스 공식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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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은 할렘에서 정신적인 지주였다. 스물두 살이던 1954년 팀에 들어가 100여개 나라를 돌며 7500경기를 뛰었다. 1984년부터 잠시 할렘을 떠나 1987년까지는 슈팅 스타즈에서 뛰었고 1988년에 직접 '레몬과 함께 하는 할렘 올스타' 팀을 따로 만들어 팬들 앞에 서기도 했다. 1994년에는 친정팀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않고 복귀해 2001년 1월 5일까지 활약했다. 농구 자체를 즐겼고 항상 팬들을 위해 코트를 누볐다. 레몬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이 나의 운명"이라고 했다. 하프 코트에서 '훅슛(팔을 길게 뻗어 던지는 슈팅)'과 드리블을 하다가 갑자기 연결하는 '노 룩 백패스(시선은 다른 곳에 두고 뒤로 패스)'는 전매특허였다. 2000년에는 전 세계에 농구를 잘 알린 공로로 매년 농구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존 번 상'을 받았다.

그의 발자취는 현재 할렘에 속한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할렘 팀의 현 최고경영자(CEO) 커트 슈나이더(48)는 "레몬은 할렘의 상징적인 존재다. 재치 있는 선수인데다 전 세계 수백만 팬들에게 오래 기억될 명장면들을 남겼다"고 했다. 할렘은 레몬이 남긴 철학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레몬은 늘 돈보다 행복을 강조했다. 할렘은 공연을 위주로 농구를 해 돈을 밝힌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때마다 레몬은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즐기고 농구가 재미있어서 한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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