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까
드라마 어셈블리 국회의원 진상필, 현실 정치에서도 가능할까③
지난 17일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소재로 다룬 KBS 드라마 어셈블리가 끝났다. 용접공 출신의 실직자가 어쩌어찌 국회의원이 되어 좌충우돌 활약을 펼치는 이야기는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는 진상필(정재영 분) 의원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정치가 현실 속 정치는 짜증과 고통의 대상이 아닌 감동과 구원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단 한명이라도 진상필 같은 의원이 우리 국회에서 일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진상필 같은 국회의원이 현실에서도 가능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우리 정치는 국민에게 감동과 구원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 속의 진상필은 불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총리 후보자를 상태로 25시간 동안 쉬지 않고 회의를 이어가는 '무제한토론'을 벌였고 배달수법(패자를 위한 두 번째 기회 지원법) 통과에 정치인생을 내던지기도 했다. 드라마 속 진상필은 "지옥같은 세상을 신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구원하려고 만든 게 정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드라마는 드라마 일뿐 현실과 달라'라고 우리 정치를 욕할 수 있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우리 정치 역시 감동을 찾을 수 있는 몇몇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설득의 기적= 2015년 예산안이 국회에서 처리됐던 지난해 12월2일 국회에서는 작은 반란이 있었다. 주인공은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었다. 당시 본회의에서는 예산안 부수법안에 포함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심의중이었다. 김 의원은 토론을 신청하고 연단에 섰다. 김 의원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지난해 개정되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채 다시금 법체계를 바꾸는 것의 문제점과 법안의 여러 문제점을 영상자료를 통해 제시하며 의원들에게 설명했다. 법안의 문제점은 지적하지만 부결되리라고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이 통과되리라 생각했던 이 법에 대해 찬성 114인, 반대 108인, 기권 40인으로 부결됐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당론은 꺾고 법안에 반대 또는 기권표를 행사한 것이다. 김 의원의 설명을 듣고 여당 의원들이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바꿔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담배세 인상을 주요 내용으로하는 개별소비세 표결을 앞두고 여야가 다시금 표점검을 위해 본회의를 중단시켰을 정도로 법안 부결 충격은 컸다. 하지만 이 순간은 국회가 대화와 설득이 가능한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대목이기도 하다.
◆양심과 소신에 따라=지난해 5월2일에는 기초연금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야간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던 법이었던 만큼 법안 통과는 한밤중이 되서야 처리됐다. 이날 법안 처리 과정에서 한 여당 의원의 표결은 주목을 끌었다. 진영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진 의원은 박근혜정부 첫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부내에서 기초연금에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연계하는 정부안에 반대하다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당에 돌아왔다. 진 의원은 "그동안 반대해온 안에 대해 장관으로 돌아가 어떻게 국민과 야당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양심의 문제"라고 밝혔다. 영혼 없는 공무원의 길이 아닌 본인의 철학과 양심으로 박근혜정부 복지정책의 한 축을 비판한 뒤 장관에서 물러났다.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자신이 반대한 법안 표결에 참여하게 됐다. 법안은 재석의원 195명 가운데 찬성 140명, 반대 49명, 기권 6명이었다. 표결 결과를 알리는 전광판 속 그의 이름 앞에는 반대표 행사를 뜻하는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당에 돌아온 진 의원은 자신의 양심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표결이 끝난 뒤 진 의원은 기자와 만나 "처리가 돼서 마음의 부담 상당히 덜은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법안이 행사되어 박근혜정부에 대한 미안함은 덜할 수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이후 그의 정치 행로가 순탄치 않을 것임은 뻔했지만 진 의원은 본인의 양심의 길을 걸었다.
◆국회의원직을 걸고서라도=기초연금법 처리가 의결된 날에는 야당 내에서도 또 다른 반란이 있었다. 이번에는 본인의 양심과 소신을 위해 국회의원 직을 던진 의원이 있었다. 김용익 새정치연합 의원이었다.
김한길·안철수 대표 체제였던 시절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6월4일 지방선거에서 기초연금법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후폭풍을 우려해 기초연금법 여야 절충안을 수용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에 맞서 반대 입장을 펼쳤던 김 의원은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여러분은 오늘 새정치연합이 복지와 결별하고, 정치와 결별하는 모습을 보고 계시다"며 "저는 이 과정에 참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의총이 끝나면 의원직 사직서를 써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수리하셔도 좋고 제명하셔도 좋다. 수리하시면 어디 시골 대학에 가서 복지국가가 무엇인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 제명하시면 나머지 임기동안 저 혼자라도 복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퇴 표명 직후 김 의원은 블로그에 글을 통해 "여러 의원들께 솔직히 고백하건데 사직서를 도로 받아오고 싶다. 저는 조금 더 잘해보고자 노력하고 고뇌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면서도 "그러나 정치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수도 없이 강조해온 제가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간단히 버릴 수는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역구 의원이라면 탈당으로 뜻을 전할 수 있지만 비례의원이었던 그로서는 당에서 제명되면 의원직을 잃는 것이다.
결국 김 의원은 지도부의 설득 등으로 사퇴를 번복했다. 그는 "사퇴번복에 대한 불명예는 모두 제가 지고 가겠다"며 보름만에 사퇴 입장을 철회했다. 당시 그는 "당내외 많은 분들이 간곡한 사퇴 철회 권유로, 제가 져야 할 공적 책임에 대한 강조로, 제가 주장했던 법안을 우선적으로 추진해 주겠다는 제안으로 저를 설득했다"고 덧붙였다.
◆아직 질문이 남았습니다=세월호 참사 당시에 국회에서는 여러 모습이 있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 몇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지난해 5월14일 국회에서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는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현안보고'가 있었다. 19대 국회 상반기 안행위 마지막 전체회의가 있었던 이 자리에는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 경찰청장, 소방장재청장 등이 출석해 세월호 참사와 구조 당시의 대응과정을 국회의원에 설명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회의가 저녁 시간에 다다르자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만 하자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다음은 당시 속기록 일부다.
-김현 위원 : 예. 그런데 저는 이렇게 봅니다. 이 건은, 오늘 사실은 이게 몇 시에 끝날지 모르겠으나 저는 계속 질의를 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준비한 자료의 3분의 1도 안 했기 때문에 (질문을) 계속할 겁니다.
(중략)
=위원장 김태환 : 김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김현 위원 : 저 계속 추가질의 할 건데요.
=위원장 김태환 : 이제 다 끝났습니다.
-김현 위원 : 왜요?
=위원장 김태환 : 아니, 혼자의 상임위가 아니지 않습니까?
-김현 위원 : 아니, 혼자라도, 둘이라도요.
=위원장 김태환 : 이 정도로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김현 위원 : 의사진행발언 하겠습니다, 그러면.
=위원장 김태환 : 아니, 이 정도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김현 위원 : 안 되겠습니다.
=위원장 김태환 얼마나 하셔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제가 드릴 테니까……
이날 김현 새정치연합 의원은 포효하듯이 사고 관련 책임자와 경찰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몰아세웠다. 그는 당시 회의가 끝무렵이 되자 다른 의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울 때에도 맹렬하게 질의를 이어갔다. 묻고 따지고, 또 따졌다. 당시 모습을 지켜봤던 한 국회관계자는 "김 의원의 질의가 매섭거나 새로운 진실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희생자 가족들이라면 국회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나서서 책임자들의 책임을 물어주는 모습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치생명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올해 5월에는 여야는 법률과 상충하는 행정입법을 국회가 수정요구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서 길고 긴 협상을 벌였다. 행정입법의 문제점은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국회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만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정부가 만든 시행령으로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행령을 손보려 하지 않자, 국회에서 시행령 고치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나왔다.
당이 여야의 의견을 종합하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일정부분 인정하더라도 대통령이 사인해 잉크도 마르기 직전인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다시금 번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회가 오랜 숙제인 행정입법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손보려 한 것이다. 여야간의 오랜 절충과 타협을 거친 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깊은 논의 끝에 국회법은 한밤을 넘어 새벽에야 개정되었다. 하지만 이 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놓이게 됐다. 거부권 행사 직후 당시 국회법 처리에 합의해 줬던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는 사퇴의 압력에 놓이게 된다. 구체적으로 지목되지는 않았지만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의 당사자가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새누리당의 13일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여당은 의총을 통해 유 전 원내대표를 재신임했지만 대통령에 가까운 친박계 의원들의 흔들기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결국 여당은 자신들이 통과시킨 국회법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동 폐기 수순을 밟았다. 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지도부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재신임까지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13일만에 다시금 의총을 열어 사퇴를 권고해야만 했다. 유 전 원대대표는 결국 사퇴했다. 그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 전 원내대표가 언급한 가치는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였다. 이어 그는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유 전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이미 감동을 줬다. 통상적으로 교섭단체 연설은 국회의 의례적인 행사로 치부됐지만 그는 지난 4월8일 연설은 시작도 끝도 달랐다. 연설이 끝난 직후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례적으로 "아주 훌륭한 내용의 훌륭한 연설"이라며 "유승민 대표께서 수고가 많았습니다"라고 칭찬했다. 새로운 보수의 지향점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은 그의 연설의 시작은 이랬다.
"1년 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2학년 허다윤 학생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여 오늘까지 엄마 품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윤이의 어머니는 신경섬유종이라는 난치병으로 청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내 딸의 뼈라도 껴안고 싶어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윤 양과 함께 조은화·남현철·박영인 학생, 양승진·고창석 선생님, 권재근 씨와 권혁규 군 부자, 이영숙 씨, 이렇게 9명의 실종자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피붙이의 시신이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슬픈 소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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