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울린 법조계 '앗 나의 실수'
법률소비자 피해 상당해 대책 필요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전산망을 통해 고객 정보를 빼낸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 상고심 선고를 기다리다 황당한 일을 겪게 됐다.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가 하급법원에 절차를 문제 삼아 사건을 돌려보낸 것. 이유가 기막혔다. 1심 판결서에 재판장의 날인이 누락됐는데, 이 오류가 항소심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대법원까지 올라가 파기환송 판단을 받은 것이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41조에 따르면 재판서에는 재판한 법관이 서명 날인해야 한다"며 "이러한 서명날인이 없는 판결은 형사소송법 제383조 1호가 정한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률의 위반이 있는 때'에 해당돼 파기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조인의 실수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모씨의 사례는 법관의 실수인데, 검찰도 '날인 누락' 실수로 피고인의 재판을 힘들게 만든 적이 있다. 2012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덕흠(60ㆍ충북 보은ㆍ옥천ㆍ영동) 새누리당 의원의 혐의가 담긴 공소장에 청주지검 담당 검사가 기명날인(또는 서명)을 하지 않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안은 이듬해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이 발견했다. 담당 검사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서명을 했고, 공소의 효력은 유지됐지만 판결 후에도 적법성 논란이 일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까지 나서 "검찰 업무는 국민 기본권과 직결돼 있어 한치의 오류도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날인을 소수의 법조 공무원이 관리하는데 결재 과정에서 꼼꼼하게 보지 않는 경우 누락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고 전했다.
변호인의 경우 항소장 제출 시기를 놓쳐 의뢰인의 재판권을 훼손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국선변호사 A씨의 사례는 이런 유형이다. 버스에서 여고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청각ㆍ언어 장애인 B(57)씨는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버스가 움직이면서 여고생과 몸이 닿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았다며 1심에서 무죄를 주장한 B씨는 1심 선고 후 A씨에게 항소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항소를 해주겠다고 B씨에게 알린 뒤 항소 기간인 7일 이내에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심 판결은 확정돼 B씨는 자신의 주장을 항소심 재판에서 다루지도 못한 채 '성범죄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게 됐다.
홍금애 법률소비자연맹 기획실장은 법조인의 황당한 실수로 법률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홍 실장은 "법원ㆍ검찰은 소송법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처벌도 없다"며 "변호사들이 실수를 하면 법률소비자가 민사 소송이라도 제기할 수 있지만 법원ㆍ검찰은 그마저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법을 어긴 법원ㆍ검찰 공무원이 징계ㆍ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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