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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남산의 부처님,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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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기는 이들, 아니 소리가 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다. 하루를 여는 소리, 만물을 잠에서 깨우는 그 소리는 세상의 어느 음악보다도 듣기 좋은 생명의 합창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 새 소리를 들을 생각에 새벽녘에도 아파트 1층 현관문을 여는 마음이 가볍게 설레기조차 한다. 그 새소리가 없다면 아침은 얼마나 삭막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버스를 타고 회사로 나올 때 종종 남산에서 내려 걸어오곤 하는데 그럴 때도 새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아침의 산책길이 더욱 즐겁다. 서울이건 다른 어느 곳이건 도시건 시골이건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남산에도 새들 가운데 특히 눈에 많이 띄는 건 역시 참새다. 남산순환로를 걷다 보면 이 녀석들이 그 작은 몸으로 짹짹대며 총총 뛰어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바삐 걷다가도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는 참새들이 삼삼오오 모여 모이를 찾는 걸 한참 구경하곤 한다.
예전에는 새 하면 큰 날개를 펴고 활강하는 독수리나 매에게 눈길이 끌렸지만 언젠가부터 참새를 가장 좋아하게 됐다. 참새는 아무리 자라도 늘 아기 같다. 어미새가 돼도 아빠새가 돼도 내 눈엔 그저 어린 아이로 보인다. 그 작고 여린 몸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까, 안쓰러운 마음까지 든다.

이 세상에는 강한 존재, 힘 센 생명이 있는 반면 약한 존재, 연약한 생명도 있다. 힘센 존재가 있으려면 약한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참새 같은 작은 새들은 세상의 약한 것들, 연약한 존재들의 세계를 떠맡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어쩌면 참새가 그 가녀린 몸뚱이로 지저귀는 소리는 세상의 온갖 연약한 것들, 세상의 작고 약한 생명들을 아껴달라고 하는, 참새의 모습으로 온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조상들이 참새에게 '참'자를 붙여준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던 건 아닐까. 선량한 마음을 갖게 해 주는 고마운 새라며 참새라고 이름 지어 준 옛사람들의 그런 마음이야말로 '참' 마음이 아닐까.

남산에서든 동네 뒤의 야산에서든, 집 앞의 마당에서든 참새가 지저귀고 있으면 그 소리를 잠시 가만히 들어보길.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작은 몸뚱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보길. 그때 약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들을 잘 보살피라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 그 참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곳이야말로 교회이며 절이 아닐까.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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